"중국계 은행들이 저리로 빌려주겠다며 공격적으로 대출 세일즈에 나서고 있습니다." (A시중은행 자금담당 부장)
"콜만 하면 대출 라인을 깔아주겠다는 중국계 은행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B지방은행 관계자)
공상은행 등 중국계 은행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은행을 상대로 돈놀이를 하고 있다. 미국ㆍ유럽계 등 선진 외국계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지속에다 빠듯한 본국의 자금사정으로 해외영업이 위축되는 틈을 타 중국계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국내 금융시장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건설ㆍ공상 등 국내에 진출한 중국계 은행들은 국내에 법인을 세우지 않고 모두 지점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국 금융당국으로부터 자기자본 적정성 규제를 받지 않고 중국 본점으로부터 사실상 무제한으로 자금을 차입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점을 십분 활용해 국내 시중은행 및 지방은행을 상대로 1년 미만의 단기대출은 물론 대상 은행이 필요하면 언제든 자금을 쓸 수 있는 대출 라인인 '커미티드 라인(committed line)' 계약 체결에 주력하는 등 발 빠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0%대 조달금리로 금융시장 공략=중국계 은행들의 마케팅 강점은 무엇보다 해외에서 아주 값싸게 자금을 차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금력이 막강한 중국의 국유은행인 공상은행ㆍ교통은행 본점으로부터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보다 싼 가격으로 돈을 끌어 쓸 수 있어 자금규모 및 금리 경쟁력에서 앞서나갈 수밖에 없다.
금융계에 따르면 중국계 은행들은 6개월 리보(0.3~0.4%)보다도 싼 가격의 0%대 금리로 본점으로부터 차입해 국내 시중은행에 1% 안팎의 금리로 단기대출 영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일종의 마이너스 대출인 커미티드 라인 계약을 체결, 미사용 한도액에 대해서는 30bp(0.3%)의 정기 수수료를 받고 실제 대출이 일어나면 1% 안팎의 추가 금리를 챙기고 있다.
국민은행은 현재 한 중국계 은행과 단기 형태로 5억달러의 자금을 빌렸으며 신한은행은 중국계 은행을 포함해 외국계 은행과 수억달러의 커미티드 라인을 체결한 상태다. 신한은 이와 별도로 중국계 은행으로부터 4,000만달러 규모의 장기 외화 조달 계약도 맺었다.
김동준 중국 교통은행 차장은 "20억달러의 운용자산 중 3분의1은 본점에서 차입하고 3분의2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의 금융시장에서 차입하고 있다"며 "한국계 은행을 상대로 한 대출영업이 60% 정도를 차지하고 선박 분야 등의 기업대출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연 우리은행 자금부장은 "현재 HSBC 등과 커미티드 라인을 체결하고 있는데 최근 중국계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제의하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은행도 주요 타깃=중국계 은행들의 공략 대상은 시중은행만이 아니다.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은행도 주요 타깃이다. 모 지방은행 관계자는 "커미티드 라인을 체결하자고 하면 중국계 은행들은 바로 '콜'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방은행별로 중국계 은행과 평균 1억~2억달러 내외의 커미티드 라인을 체결하고 있으며 일부 은행은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추가로 대출 약정을 맺을 준비를 하고 있다. 광주은행은 교통은행과 현재 5,000만달러 규모의 라인을 체결했으며 추가로 공상은행 등과 오는 5월 중 5,000만달러의 약정을 맺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종택 광주은행 국제금융부 부부장은 "우리 은행의 자산규모와 유동성 상황에 맞춰 적정한 커미티드 라인 규모를 가져갈 생각"이라며 "조만간 중국계 은행과 추가로 약정을 맺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은행은 아직 중국계 은행과 약정을 맺지는 않았지만 올해 안에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중국계 은행과 5,000만달러 안팎의 커미티드 라인 체결을 준비 중이다. 전북은행은 현재 공상은행과 1억달러 규모의 대출 약정을 체결했다.
경남은행은 중국계ㆍ일본계 은행과 총 1억9,000만달러의 커미티드 라인을 체결한 상태이며 추가 약정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은행은 한국에 진출해 있는 공상ㆍ건설 등 총 5개 은행과 전부 대출 약정을 맺고 있다.
◇일부 중국계 순익 3배가량 뛰어=현재 국내에는 39곳의 외국계 지점이 영업을 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중국계 지점은 중국ㆍ중국건설ㆍ중국공상ㆍ중국교통ㆍ중국농업은행 등 5곳이다. 임상규 금감원 외은 지점 검사실장은 "미국ㆍ유럽계 은행들이 본점 자금여력이 축소돼 해외영업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무풍지대인 중국계 은행들이 풍부한 자금력으로 국내 시장에서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설은행의 경우 2011년 3ㆍ4분기 3,354억원이던 한국 내 대출 자산이 지난해 3ㆍ4분기 9,531억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고 같은 기간 순익도 102억원에서 298억원으로 3배가량 늘어났다. 일부 중국계 은행들은 커미티드 라인 체결에 관한 내용 공개를 꺼렸다. 모 중국계 은행 관계자는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커미티드 라인 규모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영업을 시작한 농업은행도 1년 남짓 사이에 자산을 1조원 이상으로 늘리며 지난해 63억원(3ㆍ4분기 기준)의 순익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