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팍스 시니카] <중> 고성장 황금시대 조종 울리나

수출·투자 꺾이고 내수도 활로 못찾아… 성장 모델 딜레마
금리·인프라 투자 통한 부양땐 부동산 가격 ·물가 불안 불보듯…
지도부 교체 앞두고 해법 고심
경제 체질개선 작업 실패하면 5년 뒤 저성장 국면 올수도


중국 남부에서 대학 졸업 후 베이징으로 올라와 한 패션 잡지사에 다니고 있는 왕홍씨. 베이징 생활 2년째인 왕씨는 3,000위안(54만원)의 집 월세에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면 월급 통장에 남는 것이 없다. 한국 기준으로 30평짜리 집값이 8억원을 호가해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꾼다. 허리띠를 졸라 매지만 도저히 베이징 생활로서는 돈이 쌓이지 않는다. 베이징 호적이 아니라 의료∙교육 등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혜택을 단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최근 아예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왕씨처럼 도시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상경했던 젊은이를 포함한 외지인들이 희망을 잃고 베이징을 떠나고 있다. 지난 2011년 베이징의 외지인 인구 수는 전년보다 60만명 줄어든 830만명을 기록했다. 베이징이 인구 센서스를 발표한 후 외지인 인구가 감소세를 보인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왕씨의 슬픈 자화상은 고속성장의 황금기가 종언 위기에 놓이고 내수 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바닥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중국경제와 오버랩된다. 1980년대 초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수출로 자본을 집적하고 정부 주도의 투자를 확대하면서 두 자릿수의 고속성장을 구가해왔다.

하지만 유럽연합(EU)발 해외 경기침체로 주요 성장 축인 수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그동안 누적돼왔던 중국경제 내부의 구조적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 수출과 투자 중심에서 내수 주도로 성장모델을 전환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내수 인프라가 없어 6분기 연속 성장률이 추락했다. 지난 2∙4분기 7.6%를 보였고 앞으로 어디가 바닥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복지가 유명무실하고 사회양극화로 중산층 기반이 없어 내수가 구조적으로 살아나니 힘들다 보니 성장모델을 바꾸려는 중국정부의 시도도 위기의 봉착해 있다는 뜻이다. 국가의 사회보험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래가 불안한 인민들은 물가에도 못 미치는 저금리라도 은행에 돈을 맡겼다. 배가 부를 대로 부른 국영은행들은 이 돈으로 대형 국영기업에 물쓰듯 돈을 대주며 천문학적인 예대마진을 챙겼다. 지난해 중국증시 상장기업 순익 중 절반이 국영은행의 몫이었다.

국영기업은 은행대출로 부동산 개발 투자에 너도나도 뛰어들며 부동산 거품 형성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지방정부는 부동산 활황을 적극 이용, 토지매각에 나서며 짭짤한 재정수익을 챙겼고 산하 투자회사를 세워 또다시 인프라 등 부동산 개발 투자에 나섰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지방정부는 10조위안이 넘는 빚더미에 앉게 됐다.

전문가들은 중국정부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 마련을 위해 도로∙교량 등 인프라 투자 일변도의 성장구조를 지양하고 교육∙의료∙연금 등 사회복지 투자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고 지적한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WB) 전 총재는 '2030년 중국'이라는 보고서에서 "중국경제의 리스크는 미국∙EU 등 '선진 경제의 불황' 때문이라기보다 중국경제의 국내적 구조적인 문제에 있는 것으로 중국이 불균형 상태의 시정 없이는 '중간소득 함정'에 빠지기 쉽고 성장의 지속도 어려워 균형 회복을 위한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내수 주도의 성장모델 전환은 ▦국가 재정지출 구조 및 세제 개혁 ▦금융 및 국영기업 개혁을 통한 중소기업 육성 ▦사회안전망 구축 ▦민영기업 활성화 등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장기 과제라는 점이다. 중국정부로서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상당 기간의 성장률 저하를 인내해야 하지만 올가을 출범하는 5세대 지도부의 안착을 위해 당장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성장률의 급격한 저하는 대량 실업을 양산, 사회불안을 야기시키며 공산당 일당 통치 정당성의 최대 기반인 경제 안정 성장 기조를 흔들 수 있다. 그렇다고 7%대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금리 인하,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한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섰다가는 부동산 가격이나 물가불안 등으로 가계소비가 줄면서 소비 중심의 성장모델 전환 작업도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중국경제가 기로에 선 가운데 경제 체질개선에 실패할 경우 앞으로 5년 뒤 위기가 오면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덩샤오핑의 경제고문이었던 원로 경제학자 우징롄은 "국영기업 수술 등 경제개혁이 지난 10년간 지지부진했다"며 "개혁을 거부하는 기득권들이 득세하면서 광범위한 부패, 돈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