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보시라이 재판이 남긴 것


중국 문화혁명 이후 최대 정치재판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보시라이의 법원 심리가 26일 끝이 났다. 이르면 9월 말께 구형과 판결이 이뤄질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대하정치드라마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럽다. 오랜만에 숙청이란 단어를 쓸 정도의 중국식 정치재판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대신 치정이 얽힌 막장드라마로 시청률을 올렸다. 보시라이가 미국 총영사관으로 도망친 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장과 부인인 구카이라이와의 관계를 루지아오스치(如胶似漆ㆍ아교와 옻나무처럼 남녀사이가 깊어 떼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표현하고 본인의 불륜을 고백했다. 뇌물수수ㆍ직권남용ㆍ공금횡령의 범죄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보시라이는 부인을 뺏긴 찌질남이자 난봉꾼으로 등장했다. 치정극은 정치드라마보다 역시 자극적이다. 서구언론들은 보시라이의 이런 말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전하며 이번 재판을 치정 스캔들로 만들었다.

법정에 선 것은 중국 공산당의 내부모순

정치적 패자로 조용히 재판에 순응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무죄를 주장한 보시라이의 전략은 시진핑 지도부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구심점을 잃었던 좌파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이러한 반응이 공산당 내 좌우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것이란 우려는 이미 계산됐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국 지도부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13억5,000만명의 0.0001%인 최고권력층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중난하이 뒤편의 추악한 뒷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중국 서민들의 마음에는 결국 시진핑 정권의 부패척결도 개혁도 미덥지 못한 그들만의 정치놀음일 뿐이다. 보시라이의 재판장에는 보시라이만 서 있지 않았다. 개혁과 부패척결을 내세우지만 어느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내부모순에 빠져 있는 중국 공산당도 법정에 서 있었던 것이다. 시진핑 체제 이후 소득재분배를 화두로 정책을 내세웠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중국인은 없다. 어차피 상위 1%는 부를 축적할 것이고 국유기업 구조조정, 부패척결도 남아 있는 1%에 이득을 안겨줄 뿐이라고 중국인들은 말한다. 외부의 시각은 더 냉정하다. 보시라이 재판 이후 서구언론들은 여전히 권력자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썩어 있는 중국을 과연 주요2개국(G2)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아직도 국가시스템 등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국이 말하는 대국관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중국 공산당이 내부모순으로 무너지거나 힘을 잃기를 바라지 않는다.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고 해도 공산당 중앙을 신뢰한다. 중산층은 개혁개방의 과실을 충분히 향유하며 현재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줄 공산당을 적극 지지하고 농민공 등 하층민은 일부 권력자의 횡포를 당 중앙이 나서서 해결해줄 것을 기대한다. 전국인민대표자회의 등 때만 되면 베이징에 몰려드는 ‘상팡(上訪ㆍ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상경해 중앙에 호소하는 행위)‘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문제는 기득권층의 개혁 저항 극복

이제 남은 것은 중국 공산당이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는 것이다. 과거의 사례로 보면 중국 공산당은 11월 예정된 제18기 당중앙위 3차 전체회의(3중전회) 전까지 치열한 노선논쟁을 벌여 해결점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정부패로 타락했지만 중국 공산당은 어느 정치세력보다 내부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정화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기존의 기득권세력과 충돌할 때, 과연 중국공산당이 내부 개혁과 변화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임시처방에만 급급할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이 이제껏 보여준 안정적인 정치체제로 중국 예찬론을 펼칠 필요도 없지만 보시라이 재판 하나로 중국 정치가 마치 큰 위기에 처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금물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