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근무환경 변화 바람

"IT기업에 인재 뺏길라" 업무부담 줄이고 주말휴식 보장 등 개선 잇따라


인턴과 말단직원들에게 혹독한 근무를 강제하기로 악명높았던 미 뉴욕 월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생들이 월가의 과중한 업무부담을 피하고 자아실현을 위해 정보기술(IT) 등 타 분야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 가운데 투자은행(IB)들은 떠나는 인재들을 붙잡기 위해 근무여건 개선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연차가 낮은 직원들은 한달에 최소 4일은 회사에 나오지 말 것을 권한다"는 사내 메시지를 배포했다. 한달 내내 출근해 업무를 보는 사내 말단직원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다. 최근 모건스탠리의 역시 말단직원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사내 고위직을 대표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미 구체적인 근무여건 개선안을 시행하는 회사들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10월 말단직원들의 업무와 사생활 간 균형을 맞추기 위한 TF를 구성했으며 애널리스트들에게 주말 근무시간을 줄이라는 공고도 냈다. JP모건 역시 말단직원들에게 한달에 한번 정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에 나오지 않고 회사에서 전화와 e메일이 올 경우 답하지 않아도 되는 '보장된 주말' 프로그램을 시험 운영하고 있다. JP모건은 업무부담을 줄이기 위해 애널리스트 수를 10% 늘리겠다는 발표도 했다.

그동안 월가 IB에 취직한 ㅂㅂ인턴·말단직원들은 혹독한 근무에 시달려왔다. 하루에 13~14시간씩 일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새벽까지 업무를 봐야 하는 관행은 업계에서 이른바 '통과의례'로 불린다. 근무시간이 일주일에 100시간에 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우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 이어폰을 꽂고 잠이 든 후 알람이 울리면 다시 일어나 사무실로 복귀하는 직원들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BoA메릴린치 런던사무소에서 일하던 한 인턴 직원이 사흘 밤낮을 쉬지도 못하고 일하다 숨진 사건으로 IB 말단직원들의 혹독한 근무여건이 공론화된 후 유능한 대학·대학원 졸업생들이 IB행을 꺼리자 IB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여름 인턴 고용시즌이 막을 연 가운데 유능한 졸업생들을 페이스북·구글 등 IT기업들이 밀집한 실리콘밸리에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면서 이 같은 움직임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 BoA메릴린치 애널리스트인 러셀 W 래드슨은 "IT업계가 사회 초년생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은 단기현상이 아닌 세대적 현상"이라며 "정말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일주일에 90시간이나 할 젊은이는 줄어들고 있다. 은행들도 이를 간파하고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2007년 와튼스쿨 학부 졸업생의 41%가 IB에 취직했으나 지난해 이 수치는 25%로 급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점점 거세지는 당국의 규제, 줄어드는 보너스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IB가 이제 젊은 인재들까지 실리콘밸리와 헤지펀드·사모펀드 등에 빼앗기고 있어 IB 수뇌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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