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무산땐… 제일모직·삼성물산 주가 동반급락… 후폭풍 몰아친다

■ 삼성물산 주총 D-4
시나리오별로 본 합병주총 이후 구도
합병 성사땐
엘리엇, 즉각 소송전 돌입… 시간끌며 시세차익 노릴듯
지분 22% 더 확보해야 승산
삼성물산 임직원 주말 반납… 소액주주 우군 확보 총력전


윤주화(왼쪽) 제일모직 패션부문 사장, 김봉영(오른쪽) 제일모직 리조트건설부문 사장,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이 지난달 말 열린 긴급 기업설명회(IR)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찬성 입장을 굳힘에 따라 합병 작업에도 다소 여유가 생기게 됐다. /서울경제DB


오는 17일 열리는 삼성물산·제일모직 임시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양사 합병은 통과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게 됐다.

삼성과 특수관계에 있는 삼성물산 지분 13.82%에다 백기사로 나선 KCC 지분 5.96%, 여기에 국민연금 지분 11.21%를 더하면 우호지분이 30.99%에 달해 엘리엇매니지먼트(7.12%), 일성신약(2.1%), 메이슨(2.2%)을 더한 반대세력 지분(11.42%)보다 20%포인트 정도 많은 지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역시 국민연금의 찬성 표시에 일단 한숨 돌렸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김신 삼성물산 사장은 최근 사장단회의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하면 합병이 성사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삼성물산 임직원들은 휴일인 지난 11·12일에도 주말을 반납하고 총출동해 소액주주들과 일일이 접촉하며 우군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를 사례별로 정리했다.

◇합병안 통과 후 소송전=삼성물산 합병이 성사되려면 주총 참석 주주 가운데 3분의2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이번 사안에 대한 관심이 워낙 커 주주 참석률이 80%에 이른다고 가정하면 삼성 입장에서는 53.3%의 찬성지분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삼성이 확실히 확보한 30.99%를 제외하면 22%가량의 지분을 더 얻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삼성물산의 주주 중 찬반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은 곳은 △국내 기관 11.05% △엘리엇을 제외한 외국인 26.41% △소액주주 24.43% 등이다.

이 중 국내 기관은 대체로 삼성 편에 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실제로 삼성은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 설득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삼성물산뿐 아니라 삼성그룹 전반에 투자하는 국내 기관 입장에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작업이 암초를 만나게 되면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기관투자가 최고경영자(CEO) 및 실무진을 상대로 꾸준히 의견을 청취해 △배당 확대 △거버넌스위원회 설치 △삼성바이오에피스 상장 등의 주주친화정책을 잇달아 내놓았다"며 "국내 기관은 대부분 찬성 쪽에 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액주주 중 절반 정도의 찬성표만 흡수해도 무난히 합병을 가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주총에서 합병이 가결될 경우 엘리엇은 즉각 소송전에 돌입, 장기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엘리엇은 법원에 낸 주총 소집 금지 가처분신청이 기각되자 잇달아 항고에 나선 바 있으며 이번 주총안 가결 역시 효력이 없다며 소송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민연금이 삼성의 손을 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전선(戰線)을 글로벌 무대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비장의 카드(?)'인 '투자자국가소송(ISD)'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이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해당 기업에 불리한 현지 정책이나 법으로 피해를 봤을 경우 국제상사분쟁재판소(ICSID)에 제소해 피해를 구제하는 제도를 뜻한다.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엘리엇이 국내법으로 정해진 합병 비율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삼성물산에 투자했기 때문에 이번 건이 ISD 제소 대상이 아니다"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삼성의 손을 들면서 엘리엇이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ISD로 소송이 걸리면 판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이 과정에서 엘리엇이 차익을 챙겨 떠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와 더불어 합병이 가결됐을 경우 엘리엇이 깨끗이 손을 털고 나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분석된다. 엘리엇이 6월3일 삼성물산 지분을 대거 매입했을 때 취득단가는 주당 6만3,560원으로 10일 종가인 6만4,400원에 판다고 가정해도 수익률이 1.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합병 부결시 삼성물산 경영 흔들기 나설 듯=상대적으로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주총에서 합병이 무산될 '불씨'도 여전히 살아 있다. 국제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가 보고서를 통해 합병 반대를 권고하면서 외국인(26.41%)들이 반대로 집결할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삼성물산 임직원들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소액주주의 투표 향배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만약 주총에서 합병안이 부결되면 엘리엇은 삼성물산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무리한 주문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삼성이 "합병이 무산될 경우 플랜B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재합병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혀 더욱 입지가 좁아졌다. 엘리엇은 당초 합병 비율을 재조정해 삼성물산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삼성이 합병을 포기하면 도리어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엘리엇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현물배당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물론 삼성물산 사업부 분사, 대규모 구조조정 등 광범위한 간섭에 나서 일시적으로 회사 주가를 끌어올린 뒤 '먹튀'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합병 반대가 과연 삼성물산의 회사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길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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