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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활황으로 다시 선망하는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증권맨. 우리나라에서 상사맨과 더불어 유일하게 '맨(Man)'자가 붙는 직업이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미생'에서 뛰어난 능력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종합상사에서 끊임없이 차별을 받았던 '안영이'가 그랬듯 증권업종도 남성의 향이 진하다. 지난해 개봉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라는 영화제목처럼 증권업종은 종합상사의 남성성을 넘어 늑대처럼 공격적이고 거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러한 증권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영화 역시 현재가 아닌 지난 1990년대가 배경이듯이 이제 증권에 '맨'자를 붙이는 것은 오래된 유물처럼 취급 받고 있다. 남성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증권우먼'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20대가 선호하는 직업으로 꼽히는 펀드매니저 세계에서도 여성 인력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금투협에 등록한 여성 펀드매니저는 5년 전인 2010년 말 2,493명에서 현재 2,670명으로 늘었다.
증권사별로 보면 KDB대우증권의 경우 여성 인력이 5년 전 1,220명에서 1,232명으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남자는 1,955명에서 1,842명으로 감소했다. 여성 지점장 수가 5년 전 8명에서 현재 16명으로 두 배 늘었다. 미래에셋증권도 838명에서 944명으로 여성 인원이 대폭 증가했다. 지점장도 5명에서 7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증권업계가 구조조정과 지점 통폐합 등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서도 증권업계 여성 인력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여성들은 수탁업무나 단순 행정 업무를 주로 맡았다면 이제는 상품개발은 물론 펀드매니저, 필드에서 직접 고객과 부딪치는 영업 일선까지 여성들의 진출 분야는 다양해졌다.
배윤정 NH투자증권 웰스매니지먼트(WM)파생상품부 사원은 NH투자증권이 자랑하는 '뉴하트형 주가연계증권(ELS)'의 개발자다. 1988년생으로 이제 28살인 배씨가 개발한 이 상품은 독창성을 인정받아 3개월간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배씨는 상품 개발은 물론 뉴하트라는 상품 이름까지 만들어냈다. 이 상품은 4개월 만에 1,000억원이 넘는 판매액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배씨는 "지난해 원금손실 및 낙인 발생에 따른 투자자들의 우려와 상처를 생각하다가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상품인 뉴하트형 주가연계증권(ELS)을 기획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투자자들이 글로벌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쉽고 성과가 좋은 상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소명(31) 삼성증권 대리는 삼성증권의 얼굴로 통한다. 삼성증권의 사내모델인 문 대리는 새로운 상품이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고객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상품 광고 사진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그녀는 고액자산가들의 재산을 주무르는 뛰어난 능력도 함께 갖추고 있다. 문 대리는 이미 6년차 프라이빗뱅커(PB)로 강남 도곡지점에서 활약하고 있다. 문 대리가 관리하는 고객들의 자산 규모는 1,000억원이 넘는다. 도곡지점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고 대리급 PB 중에서는 가장 많은 관리자산 규모를 보이고 있다. 삼성증권에서도 실력이 입증된 PB들만 된다는 웰스매니저(WM)인 그녀는 삼성증권이 자랑하는 종합자산관리계좌인 UMA 일임형 계좌 운용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문 대리는 "고객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주는 PB가 되고 싶다"며 "갖춰가는 단계지만 가능성이 많은 증권업종이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쌓아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보증권을 신탁자산 규모 업계 1위로 만든 안효진(39) 고객자산운용본부 신탁팀 부서장은 금융투자업계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증권업계 11년차인 안 부장은 운용사 등에서 장외파생상품을 담당하다 2012년 3월 교보증권에 합류했다. 안 부장은 "신탁업무를 처음 해봤지만 규모가 큰 신탁을 찾아다니며 노하우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한번 제대로 키워보자는 각오로 일을 하다 보니 처음 100억~200억원 하던 신탁자산이 조 단위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교보증권은 1조원대였던 신탁자산 규모가 안 부장이 부임한 지 2년 만에 15조원까지 늘어나며 업계 1위로 도약했고 현재는 18조5,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이 같은 성과에 올해 초 부서장으로 승진했다. 안 부장은 "신탁업무는 전문적인 운용 스킬도 필요하지만 운용 담당 직원들이 직접 고객과 만나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다"며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로 교보증권의 신탁자산 규모를 업계 상위권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숙(44) 미래에셋증권 지점장은 미래에셋증권의 심장인 센터원영업부를 맡고 있다. 김 지점장은 하나은행에서 PB생활을 하다 2007년 미래에셋증권 삼성역 지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지점장은 미래에셋증권에 온 지 4년 만에 고객 중심의 자산관리능력을 인정받아 2011년 동압구정지점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보라매지점장과 초고액자산가들의 자산관리를 하는 WM센터원을 거쳐 2013년부터 센터원영업부를 맡아 지점을 이끌고 있다. 김 지점장이 지점을 맡은 후 센터원영업부 자산은 2배 이상, 수익은 50% 늘었다. 고객들이 노후를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단순 금융상품 판매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포트폴리오 투자를 강조해 연금과 같은 장기상품에 주력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김 지점장은 개인연금·퇴직연금·저축성보험과 같은 방카슈랑스 상품까지 장기성 자산 영업 성과는 회사 내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김 지점장은 "글로벌 자산배분을 통해 꾸준히 안정적인 수익을 고객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최선"이라며 "김지숙에게 자산을 맡기면 안심이 된다는 말을 고객에게 들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옥순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본점영업팀 상무는 한국 증권역사의 산 증인이다. 올해 69세인 홍 상무는 국내 최초 여성 대리·과장·차장 타이틀은 물론 현재는 여성 최고령 증권인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다. 일명 딱딱이로 불리는 격탁매매 방식으로 거래되던 시절인 1965년 증권사에 입사한 홍 상무는 50년간 증권업 외길을 걸어왔다. 처음 경리회계 업무를 하다 주식 매매 매력에 푹 빠져 주식투자에 대해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홍 상무의 진가는 영업팀으로 자리를 옮긴 후 나타났다. 외환위기 때도 홍 상무는 월 300억원 이상의 개인자산을 관리하며 난관을 헤쳐나갔다. 홍 상무는 "일요일까지 출근하는 등 증권업무가 재미있어 푹 빠져 있었다"며 "아버지가 은행에 다녀 은행에 취업할까 생각했지만 보수적인 은행보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증권사를 선택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년에 70살이 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증권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희망을 밝혔다.
증권가를 주름 잡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과정은 만만치 않다. 사회적 편견이나 결혼, 육아 문제 등 넘어야 할 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모 증권사 여직원은 "출산하기 일주일 전까지 프레젠테이션(PT)을 하러 다녀야 했고 회사 업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출산 후 한 달 도 채 쉬지 못하고 출근을 했다"며 "개인 발전과 가정이라는 요소를 한 울타리에 넣고 감당하기에는 여성으로서 힘든 점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다른 직원도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정이나 업무 중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며 "결국 가정은 여성들의 몫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무릎을 꿇고 일을 포기하는 여성이 많다"고 말했다.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강해져야 한다는 충고도 나온다. 모 증권사 여성 임원은 "여성의 능력이 뛰어나도 결정적인 순간에 못 버텨낸다는 사회적 편견이 아직 강하다"며 "이런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여기서 물러나면 가정이 흔들리기 때문에 그래도 다닌다는 남성들의 절심함을 여성들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