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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윤진식 새누리당 의원 등과 함께 청주를 대표하는 수재 중 한 명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경영학과)를 나온 현 내정자는 대학 졸업 직전인 지난 1973년 행시 14회로 관가에 입문했다. 한국은행 조사부에 잠시 몸을 담은 뒤 1976년부터 옛 경제기획원(EPB)에서 거시경제 프레임을 짜면서 관료 초창기에는 이른바 잘나가는 경제 관료로 꼽혔다. 특히 외환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1998년에는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거시경제를 총괄하는 경제정책국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재경부에서 그와 선두를 다투던 동기로는 유지창 유진투자증권 회장, 김우석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있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그의 동기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유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강단이 있고 소신도 강한 사람"이라고 현 내정자를 평한다. 역시 KDI 원장을 역임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그는 소신과 다르면 여당과도 논쟁을 벌였다. 2011년 9월께 열렸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연찬회였다. 당시 여당 내에서 표심 때문에 복지확대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그는 복지를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전재희 당시 의원 등 보편적 복지론자들의 날 선 비판을 받는 곤욕을 감수해야 했지만 '할 말은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관료 생활이 길지 않았지만 이는 도리어 현 내정자의 삶에 '약'이 됐다. 부총리 특별보좌관을 거쳐 2001년부터 야인 생활을 한 뒤 2002년부터 6년 동안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장을 맡았는데 이 당시의 기간이 실물을 이해하는데 소중한 경험이 됐다고 그는 사석에서 말하고는 했다. 민과 관의 브리지 역할을 하면서 현장에 맞는 정책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 셈이다.
같은 줄기에서 KDI 원장 시절도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현 내정자는 2009년 KDI 원장이 된 후 소중한 글로벌 경험을 쌓았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세계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던 탓인지 통상확대와 국제경제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KDI 원장직을 맡은 후에는 글로벌통으로서의 장점을 살려 해외 유수의 연구ㆍ정부기관들과 교류를 맺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앙헬 구리아 사무총장, 근래에 물러난 세계은행 (WB)의 아르드 후스 전 부총재 등 국제기구의 유력 인사들과 두루두루 친분을 쌓았다. 현 원장은 지난해 6월 WB가 처음 발족한 지식자문위원회의 초대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일각에서 온순한 성격 때문에 국회와의 관계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지만 새 정부의 실세들과도 두루두루 인연이 닿아 있어 국회와 청와대, 각 부처와 정책을 조율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관가에서는 평한다. 여당 내에서는 친박계 김광림 의원, 야당에서는 이용섭 통합민주당 정책위의장 등이 현 내정자와 행시 14회 동기의 인연을 갖고 있다.
학계에서는 그를 "시장주의자이지만 합리적인 시장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인위적 규제 등으로 자유경제의 순리를 거스르지 안되 과도한 시장 맹신에 따른 경제 양극화는 지양한다는 뜻이다. 그는 평소에 지인들에게 과도한 '대기업 때리기'에는 반대하되 기업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왔다고 한다. 경제양극화를 풀기 위한 복지정책의 역할을 중시하되 퍼주기 식 무차별 복지는 안 된다는 원칙을 피력해왔다.
현 원장은 천종희 인하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와 함께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는 판사 출신으로 현재 해외 유학 중이며 배우자 역시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들은 해외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 내정자는 1950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일찍이 서울로 유학길에 올라 경기고 65회로 졸업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마쳤으며 동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