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경. 대한민국 국민은 직접 보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한다. 476명의 승객을 태운 6,835톤의 거대한 여객선 세월호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던 것. 인명 구조를 위해 헬기와 경비정 등이 투입됐지만, 구조인원은 172명에 불과했다. 아직도 구하지 못한 9명의 실종자와 295명의 사망자를 품고 배는 오전 11시경 완전히 가라앉았다.
지켜보던 우리에게 남은 것은 완전한 무력감, 그뿐이었다. 우리에게는 이 무력감과 죄책감을 상쇄해줄 속죄양이 필요했다. 승객들의 안전은 뒤로 한 채 먼저 도망치기 바빴던 승선원들이나 돈벌이에만 집착했던 회사 대표 등 이 사고에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했다. 수사는 고속으로 이뤄져 2014년 10월 6일까지 관련자 총 399명이 입건, 그중 154명이 구속 기소됐다.
책은 그렇게 기소된 자들에 대한 1심 재판의 법정 기록이다. 저자가 5개월에 걸쳐 33차례에 이르는 공판을 방청하며 얻어낸 수만 쪽의 증언과 증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세월호 사고의 실체이기도 하다.
사고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왜 그런 사고가 일어나야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비상식적이고 기괴한 사고였다. 온갖 의혹도 만연했다. 외국 잠수함과의 충돌이 원인이었다거나 선원들이 인명 구조를 일부러 지연시키려 했다는 괴담들이 떠돌았다. 저자가 150여 일에 거쳐 재판을 듣고 내린 결론은 그런 거대한 음모론과는 거리가 있다. 저자는 그저 보통 사람들의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행동들이 참사의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세밀하게 묘사된 사고의 기록들은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차근차근 뒷받침해나간다.
저자는 시종일관 증거와 증언 등 사실에 입각, 저술하려는 태도를 유지했지만 긴 시간 재판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느낀 점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가장 곱씹게 되는 부분은 332페이지 중 불과 15페이지 남짓에 담긴 저자의 사유다.
저자는 형사 재판을 통해 사고의 진실을 규명한 것에 의의를 두면서도 분명한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직접 위법 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책임을 물음으로써 이 사고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책임에는 면죄부를 줄 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의 입을 빌려 강조한다. "우리가 속한 제도가 부정의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거나 혹은 그런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과 연대해 그 제도에 반대해야 할 정치적 책임을 지닌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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