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혐의로 권좌에서 물러났던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가 곧 정계에 복귀할 모양이다. 태국 헌법재판소가 지난 8일 ‘4월 총선’을 무효로 하는 결정을 내리자 집권당인 ‘타이락타이(TRT)’는 곧바로 탁신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했고 탁신 본인도 헌재판결 이튿날 마치 선거유세에 나선 듯 점퍼 차림으로 방콕시내를 누볐다.
부패정치인으로 낙인 찍힌 탁신이 이렇게 당당한 것은 태국 국민 상당수가 아직도 그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재선거를 통해 탁신이 총리직에 복귀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다.
탁신은 정치지도자로서 문제가 많다. 그는 올해 초 자신의 일가가 소유한 ‘친(Chin) 코퍼레이션’의 지분 49.6%(약 1조7,500억원)를 싱가포르 국영 투자기업 테마섹홀딩스에 매각하면서 30%에 달하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엄청난 차익을 챙겼다. 그런데도 적지않은 태국 국민들이 그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는 걸 보면 탁신은 불가사의한 정치인이다.
최근 물러난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실책과 부패 때문에 총선에서 패배한 그가 사임했던 2일 AFP통신ㆍBBC방송은 ‘베를루스코니의 부활’을 자신만만하게 예언했다. 텔레친코 등 3개의 민간 방송사와 이탈리아 최대 판매부수의 ‘파노라마’지를 소유한 그의 막강한 정치적 파워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탁신만큼은 아니지만 베를루스코니도 문제가 많은 정치인이다. 그는 5년간 총리로 재임하면서 연평균 0.8%의 성장률이라는 초라한 경제성적표를 남겼고 부패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부패’라는 공통점을 지닌 탁신과 베를루스코니는 엄청난 부자라는 점도 닮았다. 베를루스코니의 재산은 120억달러(약 11조1,840억원)로 이탈리아에서 으뜸이고 13억달러의 자산가인 탁신 역시 태국에서 가장 돈이 많다.
태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왜 부패하고 돈 많은 정치인의 생명력이 이렇게 질길까. 유권자들의 민도(民度)가 형편없기 때문일까. 이탈리아는 대대적인 부패척결운동을 벌이면서 ‘마니폴리테’(깨끗한 손)를 꿈꾸다가 쓰디쓴 불황을 맛봤고 태국의 정치인 누구도 부강한 나라를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이 자꾸 재벌 정치인의 개인적 ‘성공’에 맹목적으로 기대를 걸게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