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C, 추락하는 경제에 위기의식… 개혁 고삐
Consciousness of crisis
L, 소모적 논쟁 대신 균형 선택한 리더십
Leadership of chairman
U, "선거바람 타기前…" 절박함과 타이밍
Urgency and timing
E, 민감한 쟁점은 나중에… 욕심버린 논의
Except killer issues
하르츠위원회가 구성된 후 단 6개월 만에 합의를 이룬 비결은 무엇일까. 귄터 슈미트 베를린 자유대 명예교수와 얀 베르너 포츠담대 교수 등 독일 베를린과 포츠담에서 만난 전 하르츠위원회 위원들은 'CLUE(실마리)'를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CLUE'란 △독일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Consciousness of crisis) △페터 하르츠 위원장의 리더십(Leadership of chairman)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함과 타이밍(Urgency and timing) △접점을 찾기 불가능한 핵심 어젠다 제외(Except killer issues) 등이다. 여기에 노동계와 경영계·학계·정부 대표자들 간 신뢰와 의지라는 공감대는 기본바탕이 됐다.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Consciousness of crisis)=독일 경제는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막대한 통일비용과 과도한 사회보장 지출로 급격히 추락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0년 3.2%에서 2002년 0.0%로 떨어졌고 실업률(15~64세)은 같은 기간 8.0%에서 8.6%로 상승했다. 노동시장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불만도 고조됐다.
슈미트 교수는 "실업자가 넘쳐나면서 노동시장을 이대로 놓아두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고조돼 하르츠위원회가 만들어졌다"며 "특히 옛 동독 지역의 실업률이 20~25%에 달할 정도로 높아 위원회 구성원 모두 어떤 식으로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실업수당 대상 선정과 지급, 실업자 재교육을 담당하는 연방고용청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진 것도 노동개혁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슈미트 교수는 "연방고용청에서 실업자들을 취업시킨 것으로 위조했다가 적발되면서 연방고용청 개혁을 포함해 노동시장 개혁의 고삐를 더욱 바짝 죄게 됐다"고 말했다.
◇균형의 리더십=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노동시장 개혁위원회를 설립하면서 폭스바겐 경영위원회의 감독이었던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하르츠 위원장은 폭스바겐 인사담당 이사를 맡으며 1990년대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거룩한 소를 도살하지 말고 다른 초원으로 인도하라.' 하르츠 위원장의 협상철학이었다. 독일식 표현으로 거룩한 소를 도살한다는 말은 금기사항을 깨버린다는 뜻이지만 하르츠 위원장은 이보다는 중재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베르너 교수는 "하르츠 위원장은 늘 흑백이 아니라 회색지대에 위치하며 균형감각을 지켰다"며 "소모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부분에 있어서도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식으로 토론을 이끌어갔다"고 회상했다.
◇총선 전 마무리한 절박함과 타이밍=하르츠위원회의 개혁안이 8월에 발표된 것은 노동개혁에 대한 절박함과 동시에 가을(9월22일)의 연방의회 총선도 고려됐다. 자칫 선거바람을 타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데 구성원 모두가 공감했다.
사실 독일의 노동개혁은 슈뢰더 전 총리가 처음 집권한 1999년부터 '노사정동맹'을 통해 추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슈뢰더 전 총리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직접 선정해 하르츠위원회를 꾸리는 결단을 내렸다. 기존에는 노사 추천을 받아 위원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매번 참여해온 인물로는 합의가 되지 않으니 차라리 새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 새 부대를 꾸려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베르너 교수는 "직전 해인 2001년에도 노사정동맹에서 노동시장 개혁 합의문을 작성했는데 반발이 거셌다"며 "실패에 따른 교훈으로 모든 참여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보면 슈뢰더 전 총리가 결단을 내리고 난 뒤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잃어버린 것 같이 노동개혁은 위험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큰 방향에서 합의를 보고 밀어붙인 점만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감한 쟁점은 제외=위원회에서는 한 번에 모든 개혁을 단행하겠다는 욕심은 덮어뒀다. 굵직한 방향의 개혁내용을 담되 합의가 힘든 민감한 쟁점(핵심 어젠다)들은 입법부에서 추가적으로 논의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표적으로 위원회에서 실업수당 수준(액수)은 서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지급방식 개선과 기간을 줄이는 데만 합의를 봤다. 또 하나 의견접근을 이룬 개혁안은 마이스터에 대한 규제완화다. 노동계와 학계는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점을 우려했고 경영계는 활성화 차원에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일부 직종만 완화하는 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슈미트 교수는 "노사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토론을 할 때마다 주거니 받거니 양보를 하고 받아가는 식의 타협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완화에 대한 보완책으로 당시 제안했던 최저임금이 10년이 지나서 도입됐고 합의안에 없었던 미니잡(시간제 근로) 도입이 강화된 것은 정치권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입맛대로 바꿨기 때문"이라며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