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범 '솜방망이 처벌' 없앨 듯

李대법원장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신뢰 회복해야"
법원, 비리 기업인에 잇따라 중형선고 '눈길'
총수 수사·재판받는 기업 "후폭풍 오나" 촉각

이용훈 대법원장

경제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보다 엄격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법원이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된 재벌총수에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와 함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엄격한 잣대를 잇달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경제범죄 사범의 양형 기준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 수장인 이용훈(사진) 대법원장도 ‘솜방망이 처벌’비난을 받고 있는 두산비자금 1심 판결을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며 비판함에 따라 경제범죄에 대한 법원의 인식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이용훈 대법원장은 지난 9일 저녁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법관 19명을 서울 한남동 공관으로 초청, 만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판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은 특히 “어제(8일) 언론에 보도된 사건은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두산 사건’이라고 못박지는 않았지만 두산사건 피고인 전원에게 1심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한 직후에 나와 이 판결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이후 “200, 300억원 횡령한 기업 임직원을 집행유예하는 판결은 말이 안된다”는 등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 처리를 강조해 왔다. 일선 법원의 경제사범에 대한 최근 판결을 보면 이같은 대법원장의 의지가 이미 반영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는 이날 사기대출과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에 앞서 지난 15일 서울고법 형사2부는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윤수 성원건설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 선고(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에 더해 2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이는 그동안 법원이 재벌총수 등 경제범죄 사범에 대해 ‘죄는 무거우나 국가경제에 공헌한 점을 참작’한다며 가벼운 처벌을 내려온 것에 비하면 의미있는 변화로 읽혀진다. 이 같은 법원의 미묘한 변화기류에 재계는 후폭풍을 우려하며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이런 저런 문제로 총수나 핵심 경영인들이 검찰의 수사 내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재벌그룹들은 이 대법원장의 발언 배경과 앞으로의 영향 등에 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 총수가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 등 분위기가 안좋은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기업 총수나 경영인들이라고 해서 법 위에 군림할 수는 없지만 정도 이상으로 신변구속이나 중형을 가해야 한다는 여론은 결코 경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의 경제범죄 사범 엄단이 흔들리지 않고 실행될 수 있을지에 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A로펌의 김모 변호사는 “두산 사태에서 보았듯이 대기업 앞에서는 작아지는 과거의 법원의 이미지를 깨끗이 지울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중견기업에게만 ‘엄단’이 적용되면 국민의 믿음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