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들 암분야 경쟁력 확보경쟁 치열

"병원수준 판단 잣대" 암센터 확장·통합진료시스템 도입 앞다퉈

폐암환자 박모(62)씨는 얼마 전 진료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수의 의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박씨의 상태와 치료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호흡기내과ㆍ영상의학과ㆍ흉부외과ㆍ종양내과ㆍ방사성종양학과 교수 등 5명의 전문의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먼저 심태선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모인 교수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가리키며 “환자분을 위한 최적의 치료법을 찾기 위해 모였다”고 소개했다. 도경현 영상의학과 교수가 일어나 “암세포가 쇄골(가슴 위쪽에서 어깨에 걸쳐 수평으로 나 있는 뼈) 부근까지 전이됐다”며 양전자단층촬영(PET)결과를 설명하자 김동관 흉부외과 교수가 “전이가 돼 수술과 방사선치료는 어려울 것 같다”며 “여러 전문의들과 논의한 결과 항암약물치료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에 환자가 절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낙담하자 이대호 종양내과 교수는 “수술만이 최선의 치료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치료방법이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며 “가슴 CT(컴퓨터단층촬영)를 다시 찍어 어떤 약물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라고 환자를 달랬다. 진료실을 나온 박씨는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진료과마다 소견이 달라 치료법을 결정하기 어렵다고 해 걱정을 했는데 여러 의사들의 종합적 판단을 들으니 신뢰가 생겨 열심히 치료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선진국형 암치료 시스템인 ‘통합진료시스템’을 도입해 새롭게 문을 연 서울아산병원 암센터의 진료실 전경이다. 대학병원들이 암센터 확장 및 통합진료시스템 도입 등 암치료 분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권에 위치한 서울아산병원ㆍ서울성모병원ㆍ삼성서울병원등 이른바 빅3병원을 중심으로 암분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기존 병원 서관 전체를 리모델링해 770개의 암환자 전용 병상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 암센터를 문 열고 지난 13일부터 본격 진료에 들어갔다. 한명의 암환자를 놓고 여러 관련 분야의 의사가 함께 환자상태에 대해 논의하는 ‘통합진료시스템’을 갖춰 최적의 치료법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병원측은 강조했다. 통합진료시스템은 주치의가 다른 분야 의사에게 단순히 자문을 구하는 협진을 한단계 더 끌어올린 형태다. 이 병원 암센터는 또 115병상을 갖춘 항암주사실을 별도로 마련해 환자가 원하는 시간에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했으며 퇴원한 암환자에 긴급한 문제가 생길 경우 기존 응급실 대신 이용할 수 있는 ‘암환자 전문 긴급진료실’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새로 개원한 서울성모병원은 ‘가톨릭암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병원을 독립시켰으며 전체 1,200병상 중 40%인 500병상을 암병원에 투입하며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암병원은 위암ㆍ대장암 등을 다루는 고형암센터와 강점인 혈액암치료 분야를 특화시킨 조혈모세포이식(BMT)센터로 이뤄져 있다. 성모병원역시 매일 6~7개의 암 관련 과가 모여 협진회의를 한 후 필요시 해당환자와 여러 교수들이 모여 치료법을 논의하는 협진시스템을 갖췄다. 앞서 지난해 3월 11층 규모의 암센터를 새로 지은 삼성의료원은 첫 진료부터 검사결과까지 3~4주 걸리던 것을 2~3일 이내로 대폭 줄인 원스톱서비스를 도입해 호응을 얻고 있다. 이외에 세브란스병원이 오는 2012년 개원을 목표로 지상 15층 규모의 530병상을 갖춘 암전문병원을 만들 계획이며 중앙대병원도 비뇨기암ㆍ갑상선암을 특화시킨 암센터 건립을 구상 중이다. 이화의료원은 지난달 여성암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대여성암전문병원을 개원하는 등 각 병원은 특성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각 병원들이 암분야 경쟁력 확보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것에 대해 한 대학병원의 관계자는 “암치료 기술이 그 병원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항암치료는 장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병원 수익성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대형 암센터 건립이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고 의료투자를 낭비한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정현철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은 “적어도 앞으로 20년간은 암이 가장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각 병원에서 관심을 갖고 하드웨어를 키우고 있는 것”이라며 “시설투자 못지않게 통합치료체계 구축 등 진료시스템을 잘 갖춰야 암치료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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