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돈 주머니가 2년 연속 펑크나는 현실에 정부는 “기대한 만큼 쓸 돈(세금)이 안 들어왔다”는 점을 이유로 내건다. 하지만 민간 전문가들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애당초 제대로 걷지도 못할 세금을 세입(稅入)분에 포함시킨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지적이 대다수다. 쓸 돈이 없으면 씀씀이를 처음부터 줄이든지 다른 돈벌이를 마련해야 했는데 무리한 계획부터 세운다는 것이다. 나라 살림살이를 짜는 관료들이 세입과 세출 규모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말해 ‘나라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는 했느냐’는 비아냥인 것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상황은 기획예산처가 만드는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균형재정을 실현하겠다며 내놓은 ‘2005~200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은 몽땅 새로 써야 할 판이다. 처음 실시한 올해에만 4조6,000억원이란 기록적인 적자를 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제정경제부 장관은 내년 예산이 나오기 전 “내년에도 생각한 것 만큼 세수가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계부를 제대로 못 쓰는 것은 ‘기본 가정(projection)’부터 엉망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4%대의 성장률마저 힘겨운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 5년간 실질성장률이 모두 5%대에 이를 것이란 관측을 내놓았다. 앞으로 쓸 돈이 더 걷힐 것이란 장밋빛 전망뿐이고 5년간 재정지출 증가율이 연간 6.6%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쓸 재원(재정수입)은 매년 7.8%까지 늘 것으로 분석했다. 헌데 이런 전망이 나오기 전인 지난해에만 벌써 4조3,000억원의 펑크를 냈다. 올해는 본 예산 편성에 5조7,000억원의 빚을 계획한 것으로도 모자라 4조1,000억원의 국채를 더 발행하겠다고 손을 벌렸다. 5개년 계획이 실현되려면 1년새 세금수입이 10% 이상은 늘어야 하는데 기업 실적 부진으로 내년 법인세가 줄어들 것임을 계산하면 현실과 거리가 멀다. “중장기재정계획의 유통기한이 불과 1년짜리도 못 된다”는 비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유다. 추가경정예산은 살림살이가 얼마나 무계획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세수재정추계팀장은 “매년 추경이 편성되는 점도 문제지만 사용내역이 항상 같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추경 내역을 보면 지방교부금, 서민생활 지원, 중소기업 지원, SOC 투자 등 4~5개 항목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이 분야 지출 규모만 전체의 70%에 가깝다. 태풍 피해 등의 복구를 위해 추경이 편성된 적은 2002년, 2003년 두 해에 그쳤다. 박 팀장은 “애초 본예산에 충분히 반영돼야 함에도 뒤늦게 추경에서 추가하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호주머니 사정도 예측 못하면서 지출계획만 더욱 늘리는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변양균 장관은 최근 “올해 세수가 부족하다”고 토로하면서도 “성장동력 확충 등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오는 2009년까지 총 지출은 267조원 수준에 이르지만 한도 외 지출까지 늘어나면 재원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정부 내에서조차 “세수가 부족한데 돈을 더 쓰겠다는 계획만 내놓는 게 말이 되느냐”는 자성이 나올 정도다. ㈜대한민국은 개인으로 말하면 영락없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