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화면 뚫고 나올 듯한 '엄마의 광기'

[리뷰] 영화 '마더'… 에너지 가득한 김혜자 연기 '일품'


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과 단 둘이 살아가는 엄마(김혜자)에게는 아들 도준(원빈)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겉은 멀쩡하지만 나잇값 못하고 사고나 치고 다니는 어수룩한 도준을 돌보느라 발 뻗고 잠 잘 틈도 없다. 어느 날 동네의 한 여학생이 살해당해 건물 옥상에 빨래처럼 널려 있는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서 도준의 이름이 적힌 골프공이 발견돼 도준이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늘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도준을 돌보던 엄마는 아들이 절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진범을 찾아 나선다. 영화 '마더'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진범을 찾아 나선 엄마의 여정을 좇는다. 가녀린 몸매에 신산한 표정의 엄마는 죽은 여고생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내 아들이 그런 게 아니다"며 변호 하다가 모욕을 당하는가 하면, 범인으로 의심되는 남의 집에 숨어들어 증거를 훔쳐 내기도 한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늦은 밤 살해 현장을 찾는가 하면, 살해당한 여고생의 추문을 알아내려 학생들 손에 돈을 쥐어 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변호사, 마을 주민 등 누구도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아들 도준은 살해 사건과는 관련 없는 아픈 추억들만 기억해낼 뿐이다.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세상에 맨몸으로 맞서 범인을 좇는 엄마는 위험에 처한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발톱을 세우는 맹수처럼 점점 광기로 물들어 간다. 봉준호 감독은 극 초반부터 다양한 성적 장치들을 배치해 스릴러 장르의 핵심인 서스펜스를 극대화 시킨다. 도준이 팬티 바람으로 엄마 가슴을 어루만지며 함께 자는 장면이나 엄마가 도준에게 닭고기를 발라 주며 "이게 정력에 좋대"라고 말하는 장면 등에서는 이들 모자 관계가 일반적인 모자 관계와 어긋나 있음을 보여준다. 한 두 장면을 제외하고는 시종 일관 잿빛으로 가득한 화면과 아득한 쓸쓸함을 자아내는 이병우의 음악은 극의 암울한 기운을 증폭시킨다. 자신의 자식을 돌보는 일만이 인생의 선인 엄마와 수컷의 본능은 지녔지만 정신세계는 소년에 머물러 있는 청년, 이들 모자에게 빌붙어 돈을 뜯는 또 다른 청년, 동네 남자들에게 몸을 주고 생계를 잇는 여학생과 범인의 숫자 맞추기에 급급한 경찰 등 극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현미경으로 세심하게 관찰한 우리네 삶의 한 장면으로 느껴진다. 봉 감독은 한 치의 웃음기도 허락하지 않았다. 외피는 스릴러지만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먹먹한 느낌이 내내 여운으로 남는다. 벌써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김혜자의 놀라운 에너지와 꽃미남 이미지의 전작을 전혀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놀랍게 바보 청년에 스며든 원빈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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