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역내 에너지 시장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돌입했다. 지금까지 25개 EU 회원국 개별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에너지 수급과 비축, 투자 자금 유치 등을 EU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이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한 것으로 최근 확산되고 있는 에너지 산업의 보호주의 물결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에너지는 국방과 함께 국익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인식이 강한데다, EU 회원국들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어 추진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7일 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에게 에너지 수입과 전기ㆍ천연가스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EU로 넘길 것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EU는 이를 위해 ▦러시아 등 에너지 공급국과 EU 차원의 단일 에너지 계약을 체결하고 ▦회원국들의 석유 및 가스 비축을 관리하며 ▦유럽내 단일 가스ㆍ전력 공급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국제에너지기구(IEA)에도 EU 차원으로 가입하고 ▦송유관 및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 유럽투자은행을 통한 대출을 늘릴 계획이다. EU 집행위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에너지분야 정책구상 보고서를 8일(현지시간) 발표할 예정이다. EU 집행위는 보고서 초안에서 “안전하고 여유 있는 에너지 공급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25개 회원국이 각각의 에너지 정책을 가지고 단독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EU가 에너지 통제권 확대에 나서는 것은 ‘경제 애국주의’ 확산으로 회원국간 에너지 주권이 충돌하면서 유럽의 경제성장 기조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EU 보고서는 “EU가 에너지 문제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유럽이 세계 에너지 논쟁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난해 연말 발생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가스분쟁을 계기로 역내 에너지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점도 EU가 독자적인 에너지정책 수립을 서두르는 이유로 지적된다. EU는 동시에 에너지 부문에서 외국기업의 자유로운 인수합병(M&A)을 방해한 스페인과 프랑스에 경고장을 전달하는 등 사실상의 제재절차에 착수했다. 하지만 EU 회원국 대부분 반독점과 무역, 금리와 관련된 주권은 포기했어도 에너지 주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EU와의 충돌이 예상된다. 유럽개혁센터의 카틴카 바리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와 같은 회원국에서는 유럽이라는 관점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EU의 시도가 성공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