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현물가격에 이어 장기 수요처와 맺어지는 고정거래가격도 개당 1달러(512Mb 667㎒ 기준)로 추락했다. 불과 3개월 만에 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급락, 자금 사정이 열악한 일부 반도체 업체들이 한계 상황에 내몰렸다. 업계에서는 D램 가격의 하락세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D램 업체들이 조만간 보유현금을 까먹는 ‘캐시번(cash burnㆍ현금소멸)’ 상태에 빠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익성이 한계에 달한 후발 업체들을 중심으로 노후 생산라인 조기 가동중단과 설비투자 축소가 불가피하다”며 “올해 내내 반도체 시황의 발목을 잡아온 ‘치킨 게임(chicken game)’이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D램 고정가 1달러 턱걸이=10일 대만의 반도체 시장정보 업체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2월 전반기의 D램 고정거래가격은 제품별로 9.09~11.57% 하락했다. 주력 제품인 512메가비트(Mb) 667㎒ 제품의 경우 지난달 하반기 1.13달러에서 1.00달러로 떨어졌다. 반도체 업체들은 512Mb 667㎒ 제품의 경우 내년 1ㆍ4분기까지 1달러선 안팎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해왔지만 가격하락 속도가 시장의 전망보다 훨씬 빠른 양상이다. 512Mb 667㎒ 제품의 고정거래가는 지난 9월 상반기 2.00달러에서 3개월 새 50% 하락했다. 올 1월 상반기 이 제품 고정거래가격 5.88달러에 비하면 올 들어 82.9%나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수급구조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내년 1ㆍ4분기까지 가격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D램 시장 전망을 ‘중립(neutral)’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변경한 아이서플라이는 “D램 업체들의 이익률이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며 현재로선 모든 D램 업체들이 범용제품의 경우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는 지경”이라고 진단했다. ◇‘설비투자금>이익’ 캐시번 상태=D램 가격이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면서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D램 업체들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익금보다 설비투자금이 더 많은 캐시번으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JP모건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내년 상반기까지 하이닉스ㆍ마이크론ㆍ키몬다ㆍ엘피다 등 주요 D램 업체들이 EBITDA(이자, 법인세, 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보다 설비투자액(capex)이 많아 현금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D램을 생산ㆍ판매해 벌어들인 돈보다 생산설비 증설과 유지보수를 위해 들어가는 돈이 더 많아 제품을 판매할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 처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이닉스의 경우 올 10월부터 내년 6월까지 9개월 동안 EBITDA가 23억9,300만달러인 데 반해 설비투자액은 32억6,000만달러로 8억달러 이상의 현금을 까먹을 전망이다. 독일의 키몬다와 대만 파워칩은 부족한 현금액이 11억달러 및 1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캐시번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예상 수익에 비해 급증하는 시설투자 때문. 반도체 장비업계에서는 올해 300억달러를 넘어섰던 메모리 반도체업체의 설비투자액이 내년에는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년 메모리 설비투자액은 올해보다 100억달러 가까이 줄어든 200억달러 수준에 머물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라고 분위기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