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설] 시험대 오른 EU 재정통합

유럽연합(EU)의 재정협정은 한때 중세시대의 고문실로 묘사된 적이 있다. 그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공포감을 조성해 충분한 복종을 이끌어냈다. 지난 5년간 재정협정의 위력은 고문실의 공포처럼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자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지 않고 중기적으로는 재정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이 재정협정은 하나의 규율로 서서히 자리잡았다. 11개 EU 회원국의 재정이 지난 97년부터 적자를 줄여 올해는 균형을 이루거나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제는 3대 주요 회원국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독일은 3% 제한 조건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이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절세를 위해 당초 약속했던 기한을 연장했다. 이에 따라 재정통합을 이루려는 욕구는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EU 재정에 대한 EU 집행위원회의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단일 통화권내에서 재정통제는 필수 불가결하다. 왜냐하면 중앙집권화 되지 않은 재정정책 아래서의 통화통합은 무임승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정부가 많은 돈을 차입하면 나머지 다른 나라들이 높아진 이자율 때문에 그 부담을 떠 안게 되는 식이다. 그러나 재정협정은 이런 역할을 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 각국 경제장관들은 다른 대안을 고려해볼 때다. 새로운 협정은 구조적인 재정적자를 감안하는 등 좀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프리사이즈 옷처럼 어느 경우에도 적용되는 한 가지 원칙은 남겨야 한다. 유로권은 아니지만 영국처럼 국가 채무가 적은 나라는 공공투자를 위해 더 많은 채무를 허용해야 하며 이탈리아처럼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나라는 긴축재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이 제창한 '황금룰'을 고려해볼 만하다. 이 룰은 중기 재정균형 원칙에 보다 많은 융통성을 부여한다. 황금룰은 공공투자 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국가 채무를 허용, 전 세대의 채무가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공공투자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 정부의 채무변제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채무가 GDP의 6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등의 규정도 필요하다. 각국 정부는 이 제한에 맞춰 중기적인 재정계획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협정은 재정통합에 공헌한 국가들에게 이익이 가도록 해야 하며 동시에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는 더 무거운 의무를 지우도록 해야 한다. 유로권은 단일통화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치ㆍ경제적 협정을 갈구 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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