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자산운용이 총 이사수의 절반인 5명의 이사후보를 공개한 것은 SK㈜의 이사회를 장악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사후보 가운데 2~3명은 비상임 사내이사로, 이사회 임기도 3년에서 1년으로 줄이기로 한 것은 사실상 SK㈜ 경영권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소버린, 이사회 장악 시도= SK㈜ 이사 수는 현재 사내ㆍ외 각각 5명씩 총 10명이다. 오는 3월 주총에서 재선임 대상은 사내 이사의 경우 손길승 SK 회장ㆍ황두열 SK㈜부회장ㆍ김창근 SK㈜ 사장 등 3명, 사외 이사도 박흥수 연세대 교수ㆍ하죽봉 변호사ㆍ김중환 교수(중도사임) 등 3명이다.
이번에 추천된 이사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로 시장경제 개혁이나 기업지배구조 개선 경험을 갖고 있는 점에서 `독립ㆍ투명성 갖춘 이사 선임`이라는 소버린의 홍보 전략이 소액주주나 국내 기관투자가에게 호소력을 가질 경우 이사회의 절반까지 차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경영권 장악 나서나= 소버린과 추천된 이사 5명은 한결같이 `경영권 장악 의도는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소버린이 아니라 SK 전체 주주의 이익을 따져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사 후보 제안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소버린이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줄기차게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특히 비록 비상근이지만 2~3명의 사내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 임기를 현재 3년에서 1년으로 줄이려는 것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SK 관계자는 “이사회를 장악하면 임시 주총을 통해 아무 때나 대표이사도 교체할 수 있다”며 “최소한 최태원 SK㈜ 회장 등 현 경영진의 무력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주총서 정면충돌 불가피= 일단 최회장측과 소버린이 오는 3월 주총 이전까지 타협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SK 관계자는 “소버린이 추천한 사내 이사 몇 명은 협상이 가능하나 최회장 등기이사 사퇴 및 경영일선 퇴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현재 최회장 등 오너일가와 SK 계열사, 우호세력 등 SK측의 의결권 지분은 37~38%대로 추정된다.
반면 소버린은 헤르메스ㆍ템플턴 등 우호적인 외국인 지분을 합쳐 22% 정도이다. 변수는 해외투자가 지분 21%, 개인 소액지분 추정치 13% 등 유동지분이다.
오는 3월 주총에서 이들이 어느 쪽의 손을 잡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인터뷰] 한승수 前 유엔총회의장
소버린이 SK㈜ 이사로 추천한 한승수 전 유엔총회의장은 “소버린이 아닌 소액주주 등 전체 주주 입장에서 기업가치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버린측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SK는 물론 한국 경제의 신인도도 높일 수 있다.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가 65억 달러로 4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데 코리아 디스카운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버린의 의도는 무엇이라 보나.
-적대적인 M&A는 아니라고 본다. 기업지배구조를 개선, 주주 가치를 높이자는 얘기다. 우리가 나선다고 직접 경영할 수도 없다.
▲손길승 회장ㆍ최태원 회장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아직 이사에 선임되지 않은데다 그분들의 상황도 어려운데 말할 단계가 아니다. 소버린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지도 않겠다.
[인터뷰] 조동성 서울대 교수
소버린이 추천한 이사 후보 가운데 조동성 서울대 교수가 최태원 SK㈜ 회장과 사돈간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조 교수는 2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SK 전체 주주의 이익을 따져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사 후보 제안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주변의 많은 분들과 상의해 결정했으며 소버린측과도 충분한 대화를 했다”면서 “최 회장과 인척간이어서 오히려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양심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소버린이 최 회장 퇴진을 주장하는 것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SK의 과거 역사를 볼 때 최 회장이 불가피한 업보를 짊어진 점도 있으나 법적인 결정도 존중해야 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나타냈다. 다만 “SK를 위해 조화와 타협이 필요함을 소버린에 수 차례 밝혔다”고 말해 조교수가 양 대주주 간 협상의 가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최형욱기자 / 손철기자 runiron@sed.co.kr/choihuk@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