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과 생필품 등 생활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탓에 시민들의 장바구니는 점점 가벼워지고 생활의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3일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주부가 쇼핑을 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
|
식품과 생활용품 등 생필품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서민들의 장바구니는 갈수록 가벼워지는 대신 생활에 대한 부담감은 더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저렴한 제품에만 눈길을 돌리려고 해도 장바구니 가격은 이미 예산을 훌쩍 넘어서기 일쑤다. 생활물가가 오르면서 자연스레 대형마트나 재래시장을 찾는 발길도 뜸해지고 있다. 영세 상인들 역시 물가인상의 여파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며 하루 매상이 크게 줄어 걱정이 앞선다.
서울 후암동에 사는 주부 김모(38)씨는 인근 대형마트에 가는 날이면 메모지에 적힌 반찬거리와 생필품 목록 중 필히 3~4개 품목은 빼놓고 장을 본다. 손에 쥔 5만원으로 1년 전 이맘때면 13~14가지 정도를 다소 여유 있게 고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10가지 이상 장바구니에 넣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김씨는 “체감물가가 여전히 높아 매주 장 볼 때면 겁부터 난다”고 호소했다.
◇물가인상에 가벼워지는 장바구니=생활물가가 전반적으로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는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3일 이마트 용산역점에서 만난 이광용(34)씨는 “카레와 양배추ㆍ햄ㆍ두부ㆍ요구르트 등을 총 4만원에 구입했는데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3만5,000원이면 살 수 있었다”며 “물가가 계속 오르다 보니 저렴한 상품에만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저녁장을 보러 남대문시장을 찾은 주부 김현숙(52)씨도 “원래 식구들이 고기를 즐겨 먹는 편이었는데 지난해 한근(600g)에 1만원 하던 삼겹살 가격이 올해 1만5,000원으로 오른 뒤로는 고기 먹는 횟수를 주 1회로 줄였다”고 말했다.
생활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면서 대형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도 뜸해지고 있다. 이날 한 대형마트를 찾은 주부 김모(36)씨는 “지난해에는 적어도 한달에 두세번은 마트에 왔는데 요새는 물가가 워낙 올라 한달에 한번밖에 오지 못한다”며 “평소에는 한번 올 때마다 20만원어치씩 샀지만 오늘은 딱 10만원 정도만 구입하고 돌아간다”고 밝혔다.
아이들 간식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 김현주(33)씨도 “올해부터 간식비를 주 2만원에서 1만원으로 줄이며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각종 생필품 가격이 오른 가운데 휘발유ㆍ경유 등 유류와 배추ㆍ대파ㆍ멸치 등 일부 농수산물 가격이 지난해보다 내린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가락동 농수산시장을 찾은 이종심(60)씨는 “생필품 가격은 많이 올랐지만 농산물 가격은 지난해와 비슷한 것 같다”며 “올들어 돼지고기는 주로 수입산을 구입하고 쌀처럼 반드시 필요한 품목 외에는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 원가 올랐지만 가격인상 엄두도 못내=“가뜩이나 장사가 안 돼 죽겠는데 가격을 올리는 건 엄두도 못 내죠.” 요즘 재래시장 상인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남대문시장에서 7년째 토스트와 어묵을 팔고 있는 박창규(48)씨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로 재료비는 계속 올랐지만 판매가격은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다”며 하소연했다. 실제로 어묵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각종 재료비는 1년 전보다 40% 가까이 올랐지만 한 개에 500원 하는 어묵 가격은 10년 전 그대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초 20㎏ 한통에 1만4,000원이던 LPG 가스비도 현재 3만4,000원으로 두 배 이상 올라 박씨의 걱정을 더하고 있다.
인근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김숙희(38)씨에게도 물가는 가장 무서운 존재다. 지난해 초만 해도 8,000원에 구입했던 비닐봉지 1,000장의 가격은 1년 새 1만6,000원으로 두배나 뛰었고 같은 기간 10㎏짜리 밀가루 반죽 한통 가격도 60% 넘게 올랐다. 김씨는 “재료값이 오른 만큼 호떡 가격을 올리면 누가 사먹을까 하는 걱정에 1개에 700원하는 호떡 값을 섣불리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며 푸념했다. 동대문 패션몰의 상인들도 일년 중 가장 매출이 활발한 봄 시즌이 찾아왔지만 걱정이 앞선다. 각종 원가는 올랐지만 위축된 소비심리를 감안할 때 소매가격을 책정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대문 한 패션몰에서 여성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오정연(35)씨는 “환율과 원단ㆍ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전년 대비 15~20%가량의 원가상승 요인이 발생했다”며 “하지만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 무작정 소비자가격을 올릴 수도 없어 일부 상품 위주로 10% 이내에서 판매가격을 올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