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정책당국자들이 평소 `금리`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 편이 좋다.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통하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모범답안이다.
지난 달 30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한 그린스펀 의장은 금리 추가인하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마지못해 `금리`를 언급했다. 그것도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경기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고 추가적인 부양책이 필요하다면 금리인하를 준비할 것”이라며, 매우 원론적이며 상식적인 선에서 답변했을 뿐이다. 의원들과의 정책적인 자리여서 이례적으로 답했을 뿐, 기자회견은 물론이고 어떤 초청연설에서도 그린스펀은 `금리`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시장이 미리 알아채고 반응할 경우 정책의 효율성이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동향을 얘기할 때도 단정적인 표현을 피한다. 하원에서도 그린스펀은 “경제가 지난해에 비해 주목할 정도로 팽창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기업들의 저조한 투자와 채용기피가 경기회복의 장애물이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피해갔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책당국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단호하게 금리정책을 예고한다. 지난달 말 김진표 부총리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 뿐만 아니라 금융정책도 쓸 수 있다”고 금리인하가능성을 시사하자 박승 한국은행 총재도 “경기하강국면이 장기화될 조짐이 있어 금리를 낮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국고채 3년물 유통수익률은 이틀 연속 0.06%포인트씩 떨어졌고, 최근에는 금리인하가 확정되면 다시 시장금리가 반등할 것이라는 냉소적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처럼 금리인하가 기정사실화 되자 정세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금리를 인하하면 경기부양효과는 없고 부동산투기만 부추길 것”이라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한국은행 노조도 9일 정부와 정치권의 금리정책 관련발언이 통화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성명을 냈다. 이래 저래 금융시장 안팎이 시끄럽다. 이쯤되면 오는 13일 금통위에서 콜금리 인하를 결정했을 때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금리를 손대지 않는 쪽으로 돌아서면 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말이 앞서는 정책` 때문에 우리 경제가 지불하는 간접비용은 예상보다 크다.
<성화용 경제부기자 s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