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실] 출자총액제한 제도

정부와 대기업 그룹이 최근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제도를 계속 운영하겠다고 하는 반면 대기업 그룹은 시대에 맞지않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데 걸림돌이 된다며 제도 폐지 및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출자총액제한 제도는 대기업의 문어발 사업 확장과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으로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 그룹에 속하는 기업의 비핵심 업종에 대한 출자 상한선을 순자산(자기자본)의 25%로 제한하고 있다.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특정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마치 도미노식으로 그룹 전체가 연쇄 부실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 역량을 강화하라는 취지다. 지난 87년 처음 만들어진 이 제도는 98년 외국기업과의 역차별 등을 이유로 폐지됐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이 IMF 외환위기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인식에 따라 지난해 4월 부활됐다. 반면 대기업들은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 거세게 반발한다. 개방화ㆍ글로벌화 추세에서 출자총액제한은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 및 투자를 제약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출자제한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대기업 무분별한 출자 여전(공정위 시각) 공정위는 지난해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부활되면서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출자 행태가 부분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출자총액제한을 받는 자산 5조원 이상 11개 기업집단 재벌총수들의 지분율은 지난해 3.2%에서 1.7%로 대폭 감소한 반면 계열사지분은 36.3%에서 37.8%로 오히려 1.5%포인트 늘어 계열사출자를 지렛대로 한 총수 일가의 그룹지배는 지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계열사 순환 출자를 통한 대주주의 기업 지배 구도는 이렇다. 대주주 1인이 60억원의 자기자금과 40억원의 타인 자본을 동원해 A사를 설립한다. A사는 다시 60억원을 출자하고 또 다른 타인 자본 40억원을 끌어들여 회사 B를 세운다. 회사 B가 다시 60억을 출자하고 40억원의 타인 자본을 이용해 회사 C를 세운다. 이런 방식으로 개인 대주주는 고작 60억원의 자금으로 계열사를 계속 늘려 나간다. 실제 개인 대주주가 존재하는 11개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의 경우 총수 및 친족의 주식이 단 1주도 없는 계열사가 총 319개사 중 64.9%인 207개사에 이른다. 이들 대기업집단이 영위하는 업종수도 지난해 18.8개에서 19.2개로 늘어났고 계열사 수도 303개에서 321개로 18개 증가해 문어발 확장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공정위는 "재벌들이 선택과 집중에 필요한 신규 출자가 제한된다고 볼멘 소리를 늘어놓지만 동종 및 밀접업종 등에 대한 예외 규정이 많아 핵심 역량에 대한 출자는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 출자 제한은 시장 경제 발전에 장애(기업들 시각) 대기업들은 무조건 덩치가 크다고 출자를 제한하는 것은 시장 경제를 외면하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이들 대기업은 "정부가 대기업은 부당 내부 거래를 일삼는다는 인식아래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도입, 운영하지만 부당거래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힌다. 대기업들은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다. 혐의와 제보가 있을 경우에만 조사에 착수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뚜렷한 혐의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조사를 벌이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부분 제품과 서비스가 개방된 상황에서 계열사간 부당 거래는 현실상 어렵다는 게 대기업들의 입장이다. 역차별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가 글로벌화를 이유로 외국기업에는 각종 혜택을 부여하면서 정작 국내 대기업만을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도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정부의 출자총액제한제도로 부가가치가 높은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가 어렵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 국내 상황으로 볼 때 최소한의 규제는 불가피(전문가들의 견해) 전문가들은 "출자총액제한 문제를 따지기 앞서 국내 대기업 그룹의 지배구조와 한국적 시장 상황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재벌 총수가 한 주의 주식도 갖지 않고 수많은 계열사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복잡한 출자 형태로 꼬여있는 선단식 기업 행태를 감안할 때 최소한의 출자 총액 제한 규정은 필요하다는데 무게가 모아지고 있다. 한 대기업 그룹의 임원은 "출자제한 제도로 불필요한 계열사 지원을 할 수 없게 돼 좋다"고 말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부당 내부 거래를 막는데 기여한다고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미국도 엔론 사태 등 대형 회계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컨설팅과 회계업무를 분리하고 있고 은행과 증권회사의 겸업 허용을 다시 금지하는 등 시장 상황에 맞게 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결국 시대와 상황에 맞게 규제 시스템을 도입,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불가피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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