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속(聖俗)은 같은 몸의 다른 얼굴

설치작가 이창원 개인전 갤러리시몬 1월11일까지
본질을 투영해 인간의 모순 비추는 빛 주제의 신작

이창원 ‘섀도우 캐스터(Shadow Casters)’ 전시 전경 /사진제공=갤러리시몬

이창원 ‘섀도우 캐스터(Shadow Casters)’의 설치 모습과 작품의 뒷면 /사진제공=갤러리시

이창원의 ‘4도시:바그다드,평양,서울,후쿠시마’ /사진제공=갤러리시몬

이창원 ‘플라스틱해’ /사진제공=갤러리시몬

설치작가 이창원 개인전 갤러리시몬 1월11일까지

본질을 투영해 인간의 모순을 비추는 빛 주제로 신작

대천사였으나 사탄이 된 루시퍼의 이름을 딴 ‘루시퍼 효과’는 환경과 선택에 따라 천사도 악마도 될 수 있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준다. 선과 악 혹은 신성함(聖)과 세속성(俗)은 같은 몸의 다른 얼굴일 뿐,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작가 이창원은 이를 설치작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의 개인전이 한창인 통의동 갤러리시몬. 1층에서 중세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떠올리게 하는 ‘빛’으로 이뤄진 설치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경건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허나 거기까지 뿐이라면 종교장식과 다를 바 없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가 “뒷면도 봐야 한다”며 잡아 끈다. 작품의 뒷면은 작가의 속살과도 같을진대, 보여주겠다는 것은 의외다.

세제통,쓰레받기,주걱,얼음틀,각종 그릇과 양념통 등 세간살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관객이 느낀 숙연함은 집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런 자질구레한 플라스틱 용기들을 통과한 빛이었다.

작가는 “군 복무 시절 군대 성당의 조립식 건물 창을 유럽식 스테인드글라스처럼 꾸민 뒤로 그곳에 들어온 사람들이 더 성스럽게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봤다”며 “인간은 현상의 이면을 이해하려 애쓰는 이성의 존재인 동시에 현상에 매혹되고 속아 넘어가는 감각의 존재이자 모순의 존재”라고 말한다. 작가는 그와 동시에 일상의 숭고함까지 되새기게 한다.

서울대 조소과 졸업 후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유학한 이창원은 2005년 발표한 ‘성스러운 빛(Holy Light)’ 이후 빛을 도구로 한 다양한 작품을 통해 우리의 눈을 속이고 또 깨달음을 준다. 2층 전시장 벽에 투사된 도시의 흑백 영상도 마찬가지. 서울의 옛 모습인가 싶지만 실제는 바그다드,평양,서울,후쿠시마의 모습을 정교하게 포갠 작품 ‘4도시(4 Cities)’다. 종교전쟁, 이념, 방사능 등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갈 수 없는 도시’들을 서울과 환영처럼 연결한 결과물이다.

3층의 ‘플라스틱해(海)’는 무작위로 선정한 사람들에게 생각나는 대로 세계지도를 그리게 한 다음 바다에 해당하는 영역을 색색의 플라스틱 조각으로 채운 것.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떠내려가 섬 만한 크기까지 된다는 기사에서 착안했다”는 작가는 “누구나 육지를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생각했고 그 외 공간을 마치 ‘빈 곳’처럼 여겼는데, 이렇게 우리는 바다를 쓰레기 같은 것을 마구 버려도 되는 빈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고 토로한다.

갤러리를 나서며 자꾸만 스스로의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전시다. 내년 1월11일까지. (02)72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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