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철강산업 피해 판정 배경·파장정부·재계 공조-현지투자 확대등 서둘러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입철강에 대한 자국산업 피해 판정은 '정치ㆍ외교와 경제는 서로 다른 사안'이라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으로 앞으로 통상압력의 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테러 사태와 보복전쟁으로 우방 등 세계 각국의 지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유럽ㆍ일본 등을 포함, 20개국의 철강제품에 대해 무더기 산업피해 판정을 내린 것은 자국산업의 보호와 외교문제는 별개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판정은 그대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고 최종 조치는 미국 대통령이 내리게 돼 강도가 누그러질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 상태로는 미국이 통상문제에 대해서는 강경입장으로 나갈 것이라는 해석을 낳게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그만큼 자국경제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경제참모들은 최근 들어 "미국의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하다. 침체기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 통상압박 더욱 거세진다
이번 판정은 철강ㆍ자동차ㆍ반도체 등에 대한 통상압박의 강도가 앞으로 강화되면 됐지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엿보게 한다.
실제로 이날 산업피해 판정을 받은 철강의 경우 슬래브ㆍ열연강판ㆍ냉연강판ㆍ도금강판ㆍ후판 등 5개 판재류 품목에 대해서는 ITC 위원 6명 전원이 찬성하는 만장일치(6대0)를 이뤘다.
김성우 철강협회 통상팀장은 "올들어 지난 1~8월까지 미국의 철강제품 수입량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줄어들었다"며 "이미 상당수의 품목에 대해서는 반덤핑조치 등 각종 무역규제조치를 취하고 있어 ITC의 이번 판정은 사실상 2, 3중으로 규제강도를 높인 것"이라고 말했다.
◆ 수출 주력품목이 모두 대상
미국이 집중적으로 보호하려는 산업은 대부분 국내 수출 주력 품목과 중첩돼 있다. 이날 산업피해 판정을 받은 철강류는 물론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ㆍ자동차 등이 미국 관련산업의 감시대상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 미국의 정부ㆍ의회ㆍ관련업계의 압박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여진다.
정부와 일부 전무가들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경영실적이 크게 나빠지면서 경쟁업체인 하이닉스반도체ㆍ삼성전자와 타이완 업체들을 상대로 반덤핑 제소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이크론이 128메가 SD램에 대해 제소할 경우 수억달러 규모의 관세예치를 비롯,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악의 불황에서 유동성 위기까지 겹친 하이닉스의 경우 덤핑에 따른 피해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력 움직임 역시 심상치 않다.
최근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동진 현대자동차 사장은 "미국 의원들은 현대 등 한국차가 미국에서만 연간 50만대 가까이 수출되는데 미국차는 한국 시장에서 겨우 1,700대밖에 팔리지 않는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며 "자동차분야에 대한 교역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엄중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했다"고 전했다.
◆ 대응책마련 시급하다
재계에서는 미국의 통상수위가 갈수록 거세질 것이란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국내산업의 입장을 보다 명확하고 상세하고 전달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미국측의 이해에 맞출 수 있는 상응한 반대급부를 마련해줘야 할 것으로 주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현지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 관련 통상법 적용을 구체화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며 "다음달 한국을 방문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수입차 시장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