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의 교훈

기묘년 새해가 밝아 왔다.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감회가 유난함을 우리는 거부하지 못한다. 그러나 작년 한해를 보낸 느낌이 특별한 것이었음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었으리라 여겨진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굴욕적 상황을 맞아 모든 분야에서 거품을 빼고 내실을 기하여 긴축을 도모하기 위한 뼈아픈 고뇌와 안간힘이 전개되었던 한해였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에 반사적으로 수치를 높인 것이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도였다. 도대체 정치가 무엇인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거나,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등으로 얘기들 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들은 정치가 갖고 있는 기능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란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도출해 내어서, 그것을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배분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권력적 작용」이라고 소박하게 정의해 보더라도, 정치가 갖는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것이다. 정치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여러 분야중의 한 부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정치는 경제나 사회나 문화·교육·국방·외교등과 함께 병열적으로 나열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니다. 정치는 국가경영의 일부영역을 관장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사회·문화·교육·국방·외교 등의 모든 분야를 통할하고 포섭하는 본원적인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바로 서야 모든 것이 바로 서게 되어있고, 정치에 거는 기대는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정치권이 불신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정치를 부인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것이며, 하다못해 필요악(NECESSARY EVIL)으로서의 의미부여조차 인색해서는 단연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 현주소는 어떠한가?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곤혹스럽고 참담할 뿐이다. 정치 자체가 부정되어도 좋은 분야로 취급되고, 정치인은 모든 비리와 부조리의 화신처럼 규정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개혁의 최대 걸림돌로 등장해 있는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에서는 아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개혁이 시급한 과제임이 다시 한번 환기되는 것이다. 공영제의 대폭확대에 의한 공명선거확보, 일벌백계에 의한 금권선거 척결, 형평성과 공정성에 따른 철저한 정치인비리 사정 응징등의 과감한 이행에 의하여 정치권이 거듭나야 할 때이다. 새해 기묘년. 조선조 중종조에 도학정치 실현을 꿈꾸었던 조광조의 개혁이 애석하게 실패로 마감됐던 기묘사화(1519년)로부터 480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의 개혁을 방해했던 훈구파들의 현대판식 발호가 오늘날에는 결코 재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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