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쌀시장 개방 문제가 시끄럽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쌀시장 개방을 두 차례 유예한 후 다시 올해 기한이 만료돼 9월까지 관세화 종료 여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한다. 정부는 개방해도 최소한 몇백 퍼센트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고 국제 쌀값도 오르고 있어 국산쌀의 시장경쟁력이 충분히 확보될 수 있다고 한다. 개방 반대론자들은 다자차원에서 쌀을 덜컥 관세화해놓으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 등에서 수세에 몰려 쌀마저 관세철폐 품목으로 포함시켜야 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반대논리는 TPP협상 참여 반대논리로도 이어진다.
FTA협상에서 쌀 포함 여부는 WTO에서 쌀을 개방했는지 여부와는 논리적 상관관계가 없다. WTO 관세율이 없더라도 FTA협상국 간에 합의해 쌀 관세 상당치를 계산하고 이에 입각해 한국 쌀에 대한 FTA 관세철폐 스케줄을 정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WTO에서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오히려 가장 많이 교역장애가 발생하는 품목으로 지목돼 FTA협상의 중점대상으로 부각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개시된 한미FTA협상에서 미국이 한국 쌀을 중점 협상 대상으로 지목한 적이 있었고 우리는 미국이 미개방을 고집하는 연안 해운 분야의 특혜와 맞교환 형태로 쌀 품목을 FTA 관세 의무화로부터 제외시켰다. 그러므로 WTO 쌀시장 개방에 관한 정책 결정은 FTA 이슈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평가해 결정돼야 마땅하며 TPP 가입여부와도 연결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우리가 체결하는 FTA에서 쌀은 완전히 제외되는 것으로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기존 FTA에서는 쌀이 '관세 의무화'적용에서 제외돼 있음에 불과하다. FTA에는 관세 관련 규정들 외에도 다른 많은 의무사항들도 규정돼 있는데 이것들은 우리 쌀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이것은 정부가 FTA상대국들에 대해 쌀 관세화를 철폐할 의무는 없으나 쌀의 유통 및 판매과정에서 차별적인 조치를 취하거나 불투명한 규제를 가하거나 비관세장벽을 유지하는 경우 FTA 위반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그동안 정부가 국민들에게 '쌀이 FTA 의무화로부터 완전 제외됐다'는 식으로 설명해온 것은 잘못이며 만일 이런 효과를 거두려면 현재 추진 중인 한중 FTA부터라도 FTA의 모든 의무로부터 쌀을 제외시키는 내용의 '포괄적인 제외규정'을 둬야 한다. 한중 FTA는 특히 비관세장벽에 관한 규율규정을 우리 측 주도로 도입하려는 만큼 오히려 이러한 규정이 앞으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쌀 관련 비관세 조치들에 대해 부메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존의 FTA 규정 방식을 답습한다면 2000년 한-중 마늘 분쟁 사례처럼 협정 내용에 대한 정부-국민 간 인식의 괴리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촉발될 수도 있다. 당시 한-중 마늘협상을 통해 세이프가드 조치에 관한 여러 합의가 있었는데 이 중에는 한국이 2003년 이후 세이프가드 조치를 연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를 정확하게 국민들에 전달하지 않아 정부-국민 간 인식의 괴리를 불러왔다. 결국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국내 마늘 생산자들의 세이프가드 발동 요구를 수용 못하면서 정부가 협상책임자를 문책하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쌀 문제도 지금까지 FTA를 통해 정부가 상대국에 약속한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알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