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하후상박이라는 망령

李世正산업부차장연봉 300만달러, 현재 환율인 달러당 1,170원으로 계산하면 35억원. 하루에 1,000만원씩 버는 월급쟁이가 한국에도 등장해 화제다. 300만달러의 연봉이면 봉급이 세기로 소문난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도 단연 톱클래스다. 세계적인 큰 손 조지 소로스가 인수한 서울증권의 신임 사장인 토머스 강(강찬수)이 바로 화제의 인물. 강 사장의 등장은 여러모로 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38세에 불과한 나이, 조지 소로스에 의해 선택된 인물, 10세에 부모 손에 이끌려 미국에 건너간지 28년만에 증권사 사장으로 금의환향한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 등. 강 사장 이전에도 10억원대 연봉을 받은 사장이 있었다. 휠라코리아의 윤윤수 사장은 한때 16억원의 연봉을 받았으나 요즘엔 10억원대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윤 사장의 경우 단순한 봉급뿐 아니라 휠라코리아에서 만들어 파는 제품에 대해 일정 부분 로열티를 받은 금액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순수하게 경영능력에 대한 연봉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들어서면서 상여금을 반납하는 등 봉급이 깎인 샐러리맨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얼마나 경영능력이 탁월하고 회사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안겨줄 수 있기에 35억원이라는 (어지간한 중소기업의 1년 매출과 맞먹는) 거액을 연봉으로 주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강 사장이 미국에서도 200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다니 턱없이 높은 연봉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 기업의 사정은 어떤가. 최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 최고경영자(CEO)들의 평균 연봉은 15만711달러. 우리 돈으로 1억7,633만원(달러당 1,170원기준)수준으로 조사대상 10개국중 최하위. 미국 CEO들의 연봉이 107만2,400달러(12억5,470만원)로 가장 높았고 브라질(70만1,219달러, 8억2,042만원), 홍콩(68만616달러, 7억9,632만원), 영국(64만5,540달러, 7억5,528만원)의 순이었다. 프랑스, 캐나다, 멕시코 등에 이어 8위를 차지한 일본 CEO들도 42만855달러(4억9,240만원)를 받고 있고 9위인 독일도 39만8,430달러(4억6,616만원)로 한국의 2.6배에 이른다. 그나마 국내 CEO들의 연봉이 1억7,633만원에 이른 것은 단순한 월급뿐 아니라 판공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봉만 놓고 보면 대부분 1억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하긴 대한민국 대통령의 연봉이 9,094만원, 국무총리가 7,060만원이고 장관의 연봉은 4,967만원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CEO들의 연봉이 적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관들이 급여수준이 높은 웬만한 기업체의 과장, 차장급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현실이다. 또 대기업의 CEO를 1억원도 안되는 연봉으로 부려먹는 것은 CEO로서 적당히 알아서 챙기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러다보니 장관, CEO 등 사회 최고층까지 오른 사람들조차 원칙대로 청렴하게 살다보면 퇴임후 격에 맞는 생활이 쉽지 않을 정도다. 한국의 CEO들이 유난히 적은 보수를 받는 것은 최근 20여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하후상박이라는 망령때문이다. 하후상박때문에 임원으로 승진하면 부장때보다 월급이 줄어드는 경우조차 있다. 이제 하후상박에서 벗어나 CEO나 임원들에게 권한 및 책임과 경영능력에 걸맞는 대우를 해줘야 할 시점이다. 능력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고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요구하는게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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