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인 미셸, 두 딸과 함께 있는 오바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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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성장배경과 가족에 대해서도 호의적이다. 이민자와 그 후예로 구성된 미국인들이 오바마 가족에서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국비 장학생으로 하와이대학 유학 중 급우였던 그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마치자 마자 고국의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한다며 귀국, 그가 두 살 되던 해 부모는 이혼한다.
그는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십대에 어머니와 함께 다시 외가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와 외조부, 조모와 함께 지냈지만 청소년기 세상의 모진 냉대와 차별 등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술과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
오바마는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민간기업에서 잠시 근무한 뒤 시카고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오바마는 신앙심이 깊은 기독교 신자로 주로 교회를 기반으로 시민운동을 했는데 그가 속한 교단은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꼽히는 UCC(United Church of Christ)이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그는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 하버드대학 로스쿨에 진학한다.
그는 로스쿨 재학 중 104년 전통의 '하버드 로 리뷰' 역사상 최초의 흑인 편집장에 선출된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성공을 담보함과 동시에 주류사회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며, 당시 뉴욕타임스에 비중 있게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하버드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오바마는 동기생 대부분이 선택한 뉴욕의 대형 로펌이나 워싱턴의 법조계로 가지않고 시민 운동을 하던 시카고로 돌아온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헌법학을 강의하는 학자로, 시민의 권리를 대변하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전기는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찾아온다. 그는 2004년에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으로 중앙정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고 결국 2007년 2월11일에는 에이브러험 링컨 전 대통령이 흑인노예 해방을 알렸던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천명했다.
한편 그의 부인 미셸(44)은 가난한 흑인 부모의 밑에서 태어났지만,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우수한 재원. 그녀는 남편의 가정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흑인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