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문주현 ㈜MDM 회장

"부동산 침체가 곧 기회… 고정관념만 깨도 시장 무궁무진"




해운대 대우월드마크센텀 등 흥행… 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이름 날려
이명박 정부 공기업 '한국자산신탁' 시행사로는 처음 인수 이목 끌어
"시장은 언제나 상승과 하락 반복… 정확한 미래 예측이 사업성패 결정"
"다니던 회사가 부도 나니 어느 날 오기(傲氣)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잘났으면 한 번 혼자 해봐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주현(53ㆍ사진) ㈜MDM 회장은 국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스타급 부동산 디벨로퍼다. 나산종합건설에서 개발사업 담당 중역을 담당했던 그는 외환위기로 회사가 부도난 직후인 지난 1998년 20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단 3명의 직원을 데리고 독립했다. 분당신도시 등에서 분양대행으로 기반을 닦은 그는 이후 직접 시행에 뛰어들어 손대는 사업마다 이른바 '대박'을 터트렸다. 업계에서는 이런 그를 '미다스의 손'으로 부를 정도다. 판교 푸르지오월드마크, 부산 해운대 대우월드마크센텀, 동탄 청도솔리움 타운하우스, 대치 동부센트레빌 등 MDM이 시행하거나 마케팅ㆍ컨설팅에 참여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큰 인기를 끌며 사업성공으로 이어졌다. 올해만 해도 극심한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 MDM은 총 1조원 넘는 사업을 벌였다. MDM을 보고 있노라면 최근의 부동산 경기 침체 현상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지난해 4월에는 부동산 시행사로는 처음으로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1호인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해 다시 한 번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문 회장은 이 회사를 인수 1년 만에 신탁수주액 369억원, 당기순익 160억원으로 업계 1위에 올려놓았다. "시장에서 성공과 실패는 누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현재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됩니다. 이는 개인이나 기업, 국가 모두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문 회장의 성공은 외환위기(IMF)로 집값이 반 토막 나다시피 했던 1998년 분당 트리폴리스 분양이었다. 당시 업계에서 '미친 짓'이라며 눈총을 받았지만 그는 예상을 뒤엎고 보기 좋게 분양에 성공했다. "첫 3년간 기획ㆍ마케팅을 맡아 판 물량이 13조원이나 되더군요. 대행수수료로 받은 돈도 1,000억원이 넘었죠. 그런데 이것저것 빼고 나니 실제로 내 손에 남는 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직접 제대로 된 개발사업에 나서기로 했죠." 이후 그가 손댄 개발사업들은 한결같이 흥행 바람을 몰고 왔다. 특히 2007년 직접 시행한 6,000억원 규모의 부산 센텀시티 내 '월드마크센텀'은 디벨로퍼 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발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문 회장은 여전히 디벨로퍼로서 남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최악의 부동산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으로 사업부지를 매입한 것. 경기 광교신도시ㆍ성남여수지구, 서울 송파 문정지구 땅들을 잇따라 사들였다. 웬만한 대형 건설사들도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보유부지조차 팔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어려울 때지만 오히려 '이때 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시장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땅을 사는 입장에서는 유리한 시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치 IMF 직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문 회장은 지난해 매입한 사업부지들을 대금 지급조건이나 가격은 물론 좋은 입지의 부지도 별다른 경쟁 없이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업부지들은 모두 역세권에 위치해 있는데다 일부 부지는 나중에 환매하더라도 계약금까지 돌려받는 조건이 붙은 것들입니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면 생각할 수도 없는 조건들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땅을 사들이지는 않는다. 사업부지 매입 과정에서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 절대 일반 민간택지 내 땅은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MDM이 직접 시행한 사업은 모두 공공택지 내 땅들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민간택지는 사업의 돌발변수가 너무 많아요. 토지매입 과정에서 알박기가 생길 수도 있고 당초 기대보다 용적률이 낮게 책정될 수도 있죠. 인허가 지연에 따른 리스크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공택지는 그 같은 리스크가 거의 없습니다." 그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곧 기회라고 강조한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을 미리 내다보고 차별화된 기획만 한다면 시장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부동산 시장은 사업 착수에서 완료까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디벨로퍼들이 불과 몇 년 만에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시장이 활황이라고 마구잡이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장은 어차피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늘 좋거나 늘 나쁜 시장은 없는 거죠. 레드오션이냐 블루오션이냐는 결국 시장 속에서 누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내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는 최근 급격한 부동산 시장의 여건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1~2인 가구나 노인인구 증가 등 시장의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수요층의 니즈를 반영한 새로운 상품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는 이 같은 사례로 최근 높은 경쟁률 속에 청약을 마감한 소형 오피스텔 '송파 푸르지오시티' 오피스텔 사업을 들었다. 대우건설이 시공을 맡은 이 오피스텔은 지난 6월 평균 8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청약접수를 마감했다. "송파 푸르지오가 성공한 것은 1~2인 가구를 겨냥한 소형 오피스텔임에도 과거 고급 주상복합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게스트하우스, 고급 커뮤니티센터 등 고품격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오피스텔은 아파트 등에 비해 주거여건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깼다는 것이다. 최근 시행사나 중견 건설업체의 부도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착잡하다. 그 역시 과거 몸담았던 그룹의 부도로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부도는 원인이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사회악이 되는 겁니다. 해당 기업의 사주는 물론이고 그 피해가 회사 직원들, 금융권, 그리고 선량한 분양계약자와 가족에게까지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니까요." 그는 "기업 입장에서 선(善)은 곧 탄탄한 기반 아래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발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공격적'이라는 외부의 평가와 달리 그는 사업 과정에서 결코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상당수 디벨로퍼들이 돈 한푼 없이 남의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돈을 빌려 사업을 하다 보니 결국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소한 사업부지를 매입할 때 땅값의 20%는 투자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자금을 직접 투자하니까 그만큼 사업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죠." MDM이 여느 디벨로퍼와 다른 점은 시공사의 보증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이끌어내는 몇 안 되는 시행사라는 점이다. 이 같은 자체 PF가 가능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문 회장은 설명했다. "우선 프로젝트 자체의 수익성입니다. 탄탄한 기획력과 사업 성공에 대한 믿음을 주면 금융권도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에 대한 신뢰입니다.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대출을 만기 이전에 갚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이 같은 자체 PF 조달은 MDM이 가진 큰 경쟁력 중 하나라고 문 회장은 강조했다. 사업을 주도할 수 있으니 불필요한 비용이 줄어들어 그만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아파트들이 계속 안 팔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장에서는 '가격'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보기에 가격이 가치에 비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그는 디벨로퍼가 영속성을 가지려면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사업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혼자만 돈 벌겠다고 나서면 언젠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디벨로퍼와 시공사, 그리고 분양계약자 등 모두가 골고루 이익을 향유할 수 있을 때 사업은 성공을 보장합니다." 그는 왜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을까. 문 회장은 "신탁사 인수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결과물"이라며"부동산은 앞으로 전문성을 가진 디벨로퍼와 부동산 금융회사가 시장을 지배하는 커다란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자산신탁 49.85%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MDM뿐 아니라 문 회장은 개인 자격으로 13.89%의 지분을 투자했다. 그는 풍부한 보유자금을 바탕으로 일정 비율의 자금을 투입하는 준(準)차입형 신탁사업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risk high-return)의 차입형 신탁사업을 병행하겠다는 복안이다.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수익 극대화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문 회장은 그러나 "토지신탁은 기본적으로 높은 위험을 수반하는 상품"이라며 "우량사업만 선별적으로 수주, 철저하게 리스크를 관리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MDM의 풍부한 개발경험, 한국자산신탁의 신탁 노하우를 결합해 국내 최고의 부동산금융종합 그룹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주현 회장은
▦1958년 전남 장흥 ▦1987년 경희대 회계학과 ▦1987년 나산실업 입사 ▦1998년 ㈜MDM 창립(현 회장) ▦1999년 서울대 최고산업전 략과정수료 ▦2001년 문주장학재단 설립(현 이사장) ▦2004년 서울대 국제대학원 최고경 영자과정수료 ▦2009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2010년 한국자산신탁 인수(현 회장)
문주장학재단 운영 10년째… "사회공헌 활동은 내 의무"

"가난한 학창시절 도움 받아 되돌려주는 것뿐" 문주현 ㈜MDM 회장은 올해로 창립 10돌을 맞은 '문주장학재단'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문주장학재단은 그가 지난 1998년 회사를 창업한 뒤 3년 만인 2001년 1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재단이다. 기업가로서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젊은이들이 향학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거금을 내놓은 것이다. 문 회장은 재단의 출연금을 40억원까지 늘리며 장학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장학사업에 대한 애착은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전남 장흥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농사 일과 김 양식을 돕기 위해 고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 고향을 떠나 광주직업훈련원에 국비장학생으로 입학해 선반 밀링 작업을 배웠다. "고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나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을 보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공부를 더해 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직업훈련원을 그만둔 문 회장은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쳤지만 나이 때문에 군에 입대해야 했다. 결국 그가 그토록 열망하던 대학 입학의 꿈이 이뤄진 것은 26세 되던 1983년. 하지만 이번에는 '폐결핵'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돈을 벌어서 대학을 다녀야 했던 그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을 때 길이 열렸죠. 한 지인이 '봉신장학재단'이라는 곳을 소개해줬어요. 면담을 통해 사정을 설명했더니 재단 이사장께서 '이런 학생은 도와줘야 한다'며 장학금 지급을 결정했죠."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문 회장은 늦깎이로 들어간 나산실업에 공채 1기로 입사, 샐러리맨으로 성공신화를 써나갔다. 부동산개발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입사 7년 만에 7번의 특진을 거듭하며 이사로 승진한 것. 당시 그는 국내에서 업무용으로만 인식되던 오피스텔에 주거개념을 도입해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으며 수서 나산복합단지, 미시860, 목동스위트 등 브랜드 오피스텔ㆍ주상복합 상품들을 잇따라 히트시켰다. 하지만 한때 재계 순위 30위권까지 오르며 커가던 회사가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게 되면서 그는 사업가로 새출발을 하게 됐다. "대형 건설사에서 주택 제공 조건까지 내걸고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아닌 내 스스로의 능력으로 승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하게 된 겁니다." 그는 "만약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학업은 물론 사회적 성공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며 "사회의 도움으로 꿈을 이뤘으니 그걸 되돌려주는 것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의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어려운 성장배경 때문에 문 회장의 문주장학재단 운영방식도 남다르다. 장학생 선발과정에서 성적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 대신 장학금 지급 대상은 결손가정이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으로 국한된다. "도움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들은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문 회장은 "앞으로도 문주장학재단 출연금은 계속 늘리겠다는 게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라며 "환갑이 될 때까지 출연금을 1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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