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여개 영세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울산 북구‘시례공단’ 전경. 도로가 좁아 교차 운행하기가 쉽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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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지요. 옮길 엄두가 안 나 눌러 앉아 있을 뿐입니다.”
울산 북구 동천 강변에 위치한 일명 ‘시례공단’. 이곳에는 자동차부품업체 150여개가 다닥다닥 모여 있다. 말이 공단이지 대부분 종업원 몇 명씩을 고용,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영세 업체가 대다수다.
지난 1일 오전 이곳에서 만난 A업체 사장 S모(52)씨는 “이주비와 새로운 곳에 정착할 자금만 있으면 언제든지 떠나고 싶은 게 대부분의 바람일 만큼 이곳에서 일하는 게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들 업체가 십수년간 터전을 닦은 시례마을을 서슴없이 떠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센인(나병환자)들이 모여사는데다 무등록 공장이라는 이유로 10여 년 넘게 제도권의 관심에서 철저히 외면 받아 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울산시 등이 기업사랑운동을 대대적으로 펴고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는 남의 일처럼 여겨질 뿐이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공장 사이사이 난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차량 교행이 불가능한 탓에 ‘후진 전진’ 반복이 예사로 벌어졌다. 부품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경사 가파른 길로 위태롭게 오르내리는 광경도 목격됐다. 작업공간도 좁은 판에 주차장이 따로 있을 리도 만무했다.
공단으로 들어오는 교통편 등 기반 시설은 엉망이고 인터넷선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정상적인 기업활이 어려울 정도다. 또 상수도가 들어오지않아 지하수를 사용하다보니 끼니때마다 고충이 크다고 이 곳 사람들은 고충을 토로했다. 시례공단은 20여 년 전인 지난 1980년대말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뒤 마을의 축사를 개조해 하나 둘 씩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공단의 시초가 됐다.
그린벨트 지역이라 정식 공장이 들어설 수 없지만 한센인들의 자활을 돕는 차원에서 관할 관청도 세월을 두고 ‘자연발생적으로’ 늘어나는 업체들을 그동안 용인해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울산시에서는 이들 업체에 대한 지원은 고사하고 최근 들어서는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취재과정에서 울산시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정식공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황 파악이 안돼 있다”며 “관할 구청에 한 번 알아보라”고 말했다.
현재 이곳에는 자동차 부품관련 가공공장과 기계 제조업, 금속처리 관련 150여개 제조업체에 대략 5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 자동차 부품 중 금형, 벤딩 제품을 3차 협력업체들로부터 하청을 받고 있다. 업체들 규모는 작지만 그들만의 클러스터를 형성,자동차 산업의 한 부분을 맡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업체 관계자들은 말했다.
주민들은 “업체들이 기업운영의 어려움 때문에 떠나게 된다면 소유주인 주민들의 생계도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된다”며 대책을 호소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공장을 운영해온 C업체 사장 B(48)씨는 “시례공단은 어쩔 수 없이 생긴 우리 사회 ‘그늘’이지만 이제 현실로 인정해야 하지 않냐”며 “엄연히 존재하는 울산 산업의 한 부분인 만큼 원주민과 업체들이 함께 계속 잘 살 수 있는 방안이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업체 관계자들도 “이곳에서 버티며 공장을 운영해 갈 수 있도록 기반시설 확충을 비롯한 현실적인 개선·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울산 상의관계자는 “이 곳의 대다수 공장들이 그린벨트 지역에 위치한 무등록 공장들이지만 사실상 공단 형태를 갖추고 있는 만큼 양성화를 통해 업체 기반시설 확충 등이 시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