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골목TV'의 유쾌한 반란

김진석 CJ헬로비전 대표


40년간 가수를 꿈꾸던 한 남자가 있다. 대형 방송사에서 주말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내보내지만 그의 무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그가 용기를 내어 부산 지역 오디션 프로그램인 '갈매기스타'의 문을 두들겼다. 케이블방송 3사가 공동제작한 '갈매기스타'는 케이블 시청률 4%라는 대 히트를 기록,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또 다른 사례는 '라디오스타 양천FM'으로 서울 양천구 지역 주민이 일일 DJ가 돼서 음악과 함께 인생의 희로애락을 얘기하는 보이는 라디오 포맷의 TV프로그램이다. 지난해 6월 첫 방송 후 100회가 넘는 동안 버스기사, 시장상인, 목욕관리사, 세탁소 사장, 교장 선생님 등 120명이 DJ를 맡았다. 일일 DJ로 참여했던 한 주민은 "방송이라는 무대 위에서 끼를 발산하며 오늘 하루 실컷 울고 웃었다"며 "지역 주민의 소소하지만 진실된 삶을 계속 전달해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케이블방송사들이 지역민들의 목소리와 소식을 새로운 관점에서 담아내고 있다. 케이블TV가 지역을 근간으로 한 매체라는 점에서 출발, 지역민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시도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역 방송의 가장 큰 책무는 '지역성 구현'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캐나다의 지역 방송은 오래전부터 지역 커뮤니티의 공통 관심사를 어젠다로 삼아 프로그램을 제작함으로써 지역민의 욕구를 채우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왔다.

우리나라 케이블방송사의 지역 채널도 전국 77개 권역에서 주민들에게 지역 정보를 제공하고 현장의 소식을 담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 '지역성 구현'은 지역 채널이 중앙 방송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케이블방송사의 지역 채널은 전통을 잇고 있는 지역의 모습을 재조명해 큰 반향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양방향에 적합한 케이블방송 서비스의 특성을 활용, 지역의 생생한 소식을 전하고 지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지역 사회의 관심을 유도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이제 안방에서 TV만 켜면 지역 내 핫이슈, 이웃들의 근황과 우리 동네 맛집 등 지역 밀착형 콘텐츠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지역민 누구나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에서 열리는 발표회나 생활체육 동호회의 사용자제작콘텐츠(UCC)는 물론 지자체 행사, 아파트 부녀회의 주요 안건 등도 TV에서 쉽게 찾아진다. 한마디로 케이블방송이 TV를 기반으로 한 지역 커뮤니티 포털서비스로 진화한 것이다.

시장 포화 상태에 이른 유료방송은 거실 TV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위기를 돌파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내년에는 한미 FTA 협정에 따라 방송시장이 열리면서 거대 사업자들과 더욱 험난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위기의 시대, 새롭고 차별화된 방식의 도전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해법이 된다. 케이블방송사들이 시도하고 있는 '골목TV'의 즐겁고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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