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짚어본 리먼 파산 1년] <1> 월가 정보가 없었다

금융위기 상황 너무 모른 정부 "외환 충분" 큰소리만
빈약한 인맥·정보망 부재에 부처간 정보 교류도 꽉막혀 사전 감지 기회 마저 물거품
위기 코앞서 잇단 경고 무시… "IMF때와 다르다" 주장 급급


SetSectionName(); [되짚어본 리먼 파산 1년] 월가 정보가 없었다 금융위기 상황 너무 모른 정부 "외환 충분" 큰소리만빈약한 인맥·정보망 부재에 부처간 정보 교류도 꽉막혀 사전 감지 기회 마저 물거품위기 코앞서 잇단 경고 무시… "IMF때와 다르다" 주장 급급 김현수 기자 hskim@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997년 외환위기 때와 상황이 다르다. 어려움은 있지만 위기는 전혀 없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신청(지난해 9월15일) 일주일 전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불과 보름 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에서 "정말 이 위기가 어디까지 연결돼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기꾼 트레이더(rogue trader)의 탐욕이 결국 세계 4위 투자은행(IB)의 파산보호신청으로 이어지는 급박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위기의 시작도, 그리고 이 위기가 어디까지 연결돼 있는지도. 위기의 진앙지인 월가의 정보파악은 고사하고 정부 부처 내 정보교류 채널도 막혔다. 시계를 되돌려 지난해 9월4일로 돌아가보자.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계획을 발표하며 '9월 위기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보여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9월8일 뉴욕으로 출국한 뒤 이틀 만에 상황은 바뀌었다. 파산위기에 처한 리먼브러더스 등 월가의 자금경색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이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이라는 북한발 악재도 터졌다. 180bp(100bp=1%포인트)면 될 줄 알았던 가산금리는 210bp 이상으로 뛰었고, 결국 외평채 발행 연기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후 국제금융시장이 경색되기 시작하면서 아예 외평채 발행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이에 11월3일 강 장관은 "(외평채 발행 중지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자평했다. 문제는 사전에 미국 금융시장의 분위기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를 포기한 시점이 9월2일이고 공식발표가 10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은과 재정부의 월가 정보교류만 있었어도 외평채 발행을 검토할 수 있었다. 박병석 민주당 의원은 "국내와 국제금융 시스템이 엇박자로 돌아간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정보 부재는 이명박 정부 1기 경제팀이 9월 위기설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실책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부터 경제위기를 강조했다. 지난해 3월16일 이 대통령은 장ㆍ차관 워크숍에서 "오일 쇼크 이후 최대 위기가 오는 것 같다"고 말하며 경제위기론을 제기했다. 이후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6월에도 현 경제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위기의 실체가 코앞에 닥친 9월에는 경제위기설 차단에 급급했다. 명확한 정보를 알려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기는커녕 "외환 실탄이 충분하다"며 큰소리 치기에만 바빴다. 당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리먼의 파산신청이 중장기적으로 신용경색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미국 금융당국자들이나 할 말"이라며 "태국 밧화의 평가절하가 아시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한 것처럼 언제나 간접피해가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위치는 경제규모에 비해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인맥도 정보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홍콩의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미국 금융당국의 아시아 파트너는 일본"이라며 "한국은 여전히 미국 금융기관이 고수익을 찾아 투자하는 이머징마켓 국가 중 하나"라고 말했다. 리먼 사태 이후 금융 당국자들이 국제금융시장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뼈아픈 반성을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진영욱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지난해 10월 기자간담회에서 "(미국발 금융위기의 지속 여부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 맞혀도 우연히 맞는 것이다. 한국에서 월가의 IB 경험이라 봐야 한 유닛(unit)에 근무한 게 고작"이라며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동북아 금융허브 등을 내세우며 금융산업을 키웠지만 정작 국제금융시장의 정보를 판단할 수도 없는 '정보력 부재'가 리먼 사태 이후 한국 경제의 자화상이었던 셈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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