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책대결이다/특별기고] 이만섭 국회의장
입력 2002.05.15 00:00:00
수정
2002.05.15 00:00:00
인물·이념·정책중심 선거문화 정착돼야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고,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됨에 따라 정치판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우리 정치사상 최초로 여야 주요정당이 대통령후보를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국민까지 참여하는 이른바 '국민경선'에 의해 선출함에 따라 오랫동안 정치를 외면해왔던 국민들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적극적인 참여를 양분으로 자란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참으로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또한 그동안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지가 우리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정치행태에 식상하고 실망한 나머지 억눌려 있고, 잠재되어 있었을 뿐, 저 밑바닥에서는 항상 이글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터넷 등 발달된 정보통신 기술이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가능케 함으로써 대의제 민주주의의의 단점인 정치적 의사소통의 일방성을 극복하고 쌍방향적 의사소통과 국민의 정치에의 직접 참여 가능성을 높여놓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특히, 아직은 부분적인 현상이지만, 이번 국민경선을 통해서 우리 정치의 고질병이었던 지역감정의 벽이 약화되고 있는 징조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희망적이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지난 1987년 민주주의로의 대전환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은 지역주의에 발목이 잡혀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주의의 폐해는 그것이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국민통합을 저해한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주의는 정치인이 국민을 무시 하고, 정치를 부패시키는 제일 원인이다. 특정지역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독점적으로 대표하고, 그 지역의 민심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봉건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경제와 지식기반정보화사회로 대변되는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섰다.
21세기 새로운 시대는 유연하고, 국민의 다양한 참여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정치, 동서화합과 국민통합,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 다양한 계층의 상충되는 이해를 잘 조율하여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합의적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조정능력,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법과 원칙이 살아있는 사회기강을 세울 수 있는 청렴함과 도덕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정치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21세기형 지도자의 덕목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지긋지긋한 지역주의라는 구시대의 망령을 걷어내고, 정책대결, 정책경쟁이 이루어지는 그러한 정치, 선거문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선거기간에 후보들과 정당들은 무엇이 우리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진정으로 더 나은 길인지 자기의 비전과 정책 적 견해를 소상히 제시하여야 한다.
소란스럽게, 경박하게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토론을 유도해야 한다. 선거와 정치는 이제 상대방을 헐뜯고 죽기살기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장점으로부터 배우기도 하는 상생과 학습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에게 사랑을 받으며, 국민들을 정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는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정치권만의 과제가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과 정치권과 국민을 연결해주는 언론, 그리고 모든 책임 있는 사회적 주체들의 공동과제이기도 하다.
먼저, 국민들은 자신들이 가진 한 표의 가치를 천금처럼 무겁게 여겨야 한다. 학연, 지연, 혈연의 연고주의를 과감하게 뿌리쳐야 한다. 사실, 우리 정치권의 문제는 그러한 행태를 '표'로서 용인해온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특정 후보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는 그 후보로 하여금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을 얕잡아보게 함으로써 결국 그 정치인과 정치 자체를 타락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언론의 정치보도, 선거보도는 정책쟁점, 후보자의 정견, 인물 등에 대해서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를 담아야 한다.
또한 공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언론이 후보자들의 정책보다는 후보자들의 상호 헐뜯기를 여과 없이 중계하는 이른바 '경마보도식' 보도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그러한 보도태도는 온갖 정치적 술수와 공작정치적 작태를 부추길 뿐이며, 국민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외면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불과 2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선거를 통해서 우리 정치가 과연 얼마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정치로 거듭나느냐, 그리고 우리 정치사의 고질적인 문제의 하나인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느냐, 인물, 이념, 정책이 중심이 되는 바람직한 선거문화가 정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자들도 대권욕 보다 오늘의 어려운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 개인이나 정당보다 나라와 국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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