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이 2001년 한해에만 1조5587억원을 분식회계하고 그룹이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대주주에게 부당이익을 제공한 것은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모럴 헤저드가 위험수준을 넘어선 것을 말해준다. 이에 따라 전ㆍ현직 최고경영자 10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돼 앞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됐지만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던 재계 서열 3위 그룹이 이 정도이니 나머지 기업의 실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SK에 대한 이번 검찰수사에서 드러난 사실들은 투명경영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오너 마음대로 주물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가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은 비상장주식을 이용한 부당내부거래는 말할 것도 없고 1조1881억원의 은행부채를 없는 것처럼 처리해 이익을 부풀린 수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도덕적 암에 걸렸다”는 검찰의 꼬집음이 이해가 간다.
투명경영이 문제화되기 시작한 2001년에 이처럼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다면 분식회계가 관행처럼 실시되던 과거엔 어떠했을 까. 회사를 주머니 속의 물건 다루 듯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사재를 출연하겠다는 것이 과거 우리나라 경영주의 판에 박은 행태다.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됐다. 이제는 대주주가 사재를 출연한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통감해야 한다.
문제는 이처럼 부도덕적인 일이 종합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는데도 정부기관 등은 무얼 했느냐는 점이다. 회계법인은 말할 것도 없고 사외이사,그리고 금융기관과 정부기관이 역할을 충분히 했으면 사태가 이같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기껏 했다는 것이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으니 수사발표를 늦춰달라는 요청이었다. 담당 회계법인은 분식회계를 몰랐으니 고의성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기소된 SK관계자들 외에 금융 및 정부기관 관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그렇지 않아도 빨간 불이 켜진 경제에 대한 충격이다. 이미 금리가 오르고 SK그룹 계열사에 대한 환매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등 충격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증권시장도 발목이 잡혀 있고 대외적으로 한국기업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짐에 따라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난국타개에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 서야 한다. SK그룹이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이번 SK사건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투명경영을 통해 한국기업에 대한 불신을 씻도록 독려해야 한다. 거시경제정책을 재검토하고 재벌개혁도 속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SK비리에 대한 검찰의 단호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씁쓸한 까닭을 곰곰이 되씹어야 한다.
<오철수기자 cs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