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효전 30일부터] 한지서 우려낸 고유의 멋

『문화의 원류는 의식주에, 그 중에서도 먹거리에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우리의 미의식도 고유의 음식문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음식문화의 기본은 무엇일까요. 바로 장(醬)입니다. 나의 조형작업은 기본적으로 장담그는 과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 할수 있지요』한국화단에서 중견의 위치에 올라선 임효(44)씨의 말이다. 임씨는 홍익대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제13회 선미술상을 수상한 작가인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가 30일부터 5월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 열린다. 당초 사실묘사에 충실하던 임씨가 도부조(陶浮彫) 작업으로 넘어선데는 그의 말 그대로 우리 고유의 미학을 통한 세계성의 획득 때문이었다. 우선 작업과정이 매우 독특하다. 그는 먼저 도자 위에 요철의 모양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위에 한지로 만든 종이죽을 덮는다. 색을 머금은 종이죽이 요철을 따라 들어가기도 하고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대개 열흘정도 걸려 말린다. 대여섯번 이런 과정을 거치면 독특한 발효색이 우러난다. 마치 장맛을 우려내듯이 그런 작업은 서늘한 기운의 도움을 얻어 전개된다. 물론 종이 위에는 드로잉이 포개진다. 은은하고 촉촉한 질감이 깨끗한 뒷맛을 남기고, 화면 위에서 조금 솟아난 사람·집·꽃등이 작가의 안광(眼光)에 의해 선택된 것을 즐기는듯 평온하면서도 넉넉한 풍경을 연출한다. 작가의 작업에는 또 초승달의 야릇하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가지고 있는 빛을 모두 내뿜는 보름달과는 달리 초승달의 감춰진 기운은 운기생동(運氣生動)하는 자연의 법리를 더욱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그가 「어머니의 품」이라 하여 웅장한 나무를 그려놓은 거나 「어허, 봄이로구나」라는 이름으로 구부러진 할미소나무 밑에 하트머리를 한 사람과 바위만한 붉은 꽃들을 툭툭 던져놓은 것을 보면 해학과 익살을 즐기며 한판 굿거리를 연출하는 듯도 하다. 또는 한 칸 집에 한 사람의 그림자를 그려놓은 것을 보면 작가가 풍진의 세계를 떠난 독생(獨生)의 즐거움을 찾는 것도 느껴진다. /이용웅 기자 YYON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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