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초대석] 성윤갑 관세청장

대담: 이용웅 경제부장 yyong@sed.co.kr
"짝퉁 수출국 오명 벗는데 최선"
'지재권 보호 최우수국' 선정계기 더욱 박차
한미FTA협상서도 유리한 입장 확보 기대
FTA따른 관세행정 혁신·충원계획 마련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정에서 미국 측이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에 대해 우려를 많이 표시하더군요. (협상에서) 수세에 몰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짝퉁 수출국’의 오명에서 벗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취임 한돌을 넘긴 성윤갑(사진) 관세청장의 얼굴에는 부산함과 만족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미 FTA 등 각국과의 FTA 체결에 맞춰 관세행정을 탈바꿈시키기 위해 정부와 민간 사이에서 발품을 파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성 청장이 ‘감격’이라고 표현했듯이 세계관세기구(WCO)가 최근 169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를 지적재산권 보호 최우수국으로 선정한 점은 이 같은 고단함을 잊게 해줬다. 성 청장은 “FTA 추진과정에서 통상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이 지재권 보호 시스템을 확실하게 갖췄음을 알려야 한다”며 “이번 수상이 한국을 짝퉁 국가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을 뿐더러 FTA 협상과정에서도 좋은 ‘무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빼곡히 쌓인 업무량을 보여주듯이 살이 많이 빠진 성 청장과 만나 변화하는 관세행정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 -우선 지재권 보호 최우수국으로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짝퉁 상품(가짜 브랜드 상품) 문제로 여전히 애를 먹는 것 같습니다. ▦올해 핵심 정책과제로 가짜상품 단속을 지목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짝퉁 수출국이란 오명을 쓸 만큼 가짜상품 유통이 다양하게 이뤄집니다. 이를 뿌리 뽑지 않으면 대외 신인도를 높일 수 없을 뿐더러 교역조건도 끌어 올릴 수 없어요. 지난 2월부터 4월 말까지 특별단속본부를 설치해 500명 가까운 조사ㆍ통관요원을 투입했습니다. 단속 건수만도 363건이나 됩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5,000억원 가까이 되더군요. -잡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요. 짝퉁도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가짜 상품에도 품질ㆍ서비스 혁신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애프터서비스(AS)까지 제공된 상품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중국에서 가짜 자동차 휠을 밀수입해 판 업자들이 가짜 대리점까지 운영하면서 AS를 해주더군요. 규모도 엄청납니다. 40피트 컨테이너 40대 분량에 78만여점의 가짜 신발ㆍ의류 밀수가 적발된 일도 있습니다. 진품 규모로 환산하면 1,000억원어치로 지금까지 적발된 환적화물 밀수 중 사상 최대였습니다. 유럽ㆍ러시아 밀수출용으로 중국서 제조됐는데 워낙 물량이 많다 보니 수량 확인에만도 10여명이 투입돼 한달 이상 걸렸습니다. -가짜상품 유통으로 인한 폐해도 적지않을 것 같은데요. ▦해외에서는 가짜 항공기 부품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일도 있었습니다. 89년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일인데 기체와 꼬리 연결 볼트에 결함 있는 가짜상품을 썼다가 탑승객 55명이 사망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달걀까지 탄산칼슘과 석고가루를 이용해 만든 가짜가 적발될 정도예요. 그런데도 짝퉁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한미 FTA가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데요. 지재권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이 오랫동안 지재권 분야에서 감시 대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점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 한국이 가짜상품 단속에 적극적이고 감시 시스템이 확실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WCO 총회에서 지재권 보호 분야 최우수국으로 선정된 것을 크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등 이탈리아, 2등 헝가리…하고 부를 때만 해도 유럽이 다 차지하는구나 했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최근에는 태국과 필리핀 관세청 등에서 우리를 벤치마킹하겠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사용할 무기를 확실히 거머쥘 수 있게 돼 다행입니다. -대외인식을 끌어올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군요. 관세행정이 선진화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이 상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이 상은 WCO가 2년마다 관세행정에서 모범적인 활동을 한 국가에 주는 상으로 올해가 첫 시상이었는데 169개국 중 1위를 차지한 거니까요. 과거에 적발된 1,500여건의 밀수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만든 가짜상품 추적 시스템 ‘스파이더 시스템’이나 밀수동향관리 시스템 등을 인정한 것 같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수상으로 해외 통상마찰에서 지재권 보호 문제가 다시 제기돼도 ‘한국은 국제기구가 인정한 지재권 보호 우수 국가’라는 명분과 근거를 확실히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만만하게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제가 93년 당시 지재권 관련 일선업무를 담당할 때를 생각해보면 미국은 항상 무역대표부(USTR) 기준에 입각해 별도의 전략을 갖고 협상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왜 관련 제도나 규정이 없느냐”를 문제삼은 뒤 국내에서 이 분야의 관련규정이 갖춰지면 “왜 집행이 잘되지 않느냐”고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관련법규의 시행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이번에는 “집행실적과 성과에 대한 평가가 없다”고 비판하는 식이지요. 결국 이런 전략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한국의 지재권 보호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미 FTA에서 미국의 협상안 가운데는 불법 소프트웨어 유통단속을 위해 이를 다운로드받은 사람의 컴퓨터까지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모두 포함해 협상이 진행될 때 다뤄야 할 것입니다.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에 특허청ㆍ관세청 등 12개 기관과 민간기구가 모인 지재권보호협의회가 있는데 이곳에서 품목별ㆍ단계별 다양한 대응절차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관세 분야에서 한미 FTA와 관련해 준비 중인 것들이 이밖에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6월 1차 협상을 마친 한미 FTA에서는 개성공단 한국 상품 인정과 통관절차 간소화 등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문제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고 이밖에 현재 부산항에서 미국 세관 직원들이 한번 검사한 상품을 미국에서 또 한번 통관하는 복잡한 절차를 없애도록 협상해나갈 것입니다. 한미 FTA의 파급효과를 감안해 특혜교역 체제에 부합하도록 관세행정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다시 들여다볼 계획입니다. -한미 FTA 외에도 동시다발적인 협상들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특히 수출업체들이 관세청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관세행정 전반에 대해 업무 시스템를 혁신해나갈 생각입니다. 올 하반기까지를 ‘단기’, 한미 FTA 발효까지를 ‘중기’, 50여개국 FTA 체결을 ‘장기’로 보고 이에 따른 통관심사 체제 변경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개별 품목의 관세품목 분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가격이 얼마인지만 따져왔지만 앞으로는 특혜통관 대상인지 아닌지, 원산지 적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두 검토해야 합니다. 이 같은 시스템 변화를 위해 전략기획팀을 별도로 마련해 가동 중입니다. -업무가 더욱 많아질 것 같은데 추가 인력증원 등을 요청하지는 않으셨는지요. ▦그렇습니다. FTA 등 다양한 협정 체결에 따른 업무량 증가와 남북 경제협력 지원에 따른 통관 지원, 기업지원 확대 등에서 추가 인력이 필요합니다. 현재 직원이 4,300여명인데 10% 이상의 인력증원을 행정자치부에 요청해놓았습니다. -화제를 좀 돌려, 올해 환율이 많이 내려 관세수입 감소로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세수목표를 6조5,000억원가량으로 세워놓았습니다. 상반기 진도율을 보니 목표보다 2~3%가량 초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입이 늘면서 관세수입도 제대로 걷히고 있습니다. 관세감면 및 할당관세 품목 축소 등으로 실효세율이 2.21%에서 2.26% 오른 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약력 ▦49년 경북 청도 출생 ▦부산상고, 고려대 사학과 졸업 ▦행정고시 17회 ▦관세청 기획관리관ㆍ심사정책국장ㆍ부산세관장 ▦관세청 차장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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