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벤처기업 마케팅 담당자의 애환

최근 만난 대전의 한 로봇업체 마케팅 담당 K실장. 그는 요즘 무척 바쁘다. 최근에 회사가 고가의 청소로봇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손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서울 사무소를 열어야 한다. 서울이 누가 뭐래도 제일 큰 시장인 탓이다. 다행히 조건이 맞는 강남의 한 사무실을 계약, 이달 말 입주한다. 진짜 골치는 따로 있다. 바로 백화점을 뚫는 일이다. 백화점에 입점하면 부자 고객도 잡고 브랜드 가치도 올릴 수 있다. K실장은 기자와 만난 날도 알부자 고객이 많다는 모 백화점에서 일을 보고 나오던 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백화점이 판매 수수료 명목으로 매출의 30~40%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는 20% 정도를 예상했던 터라 격차가 컸다. 백화점 요구를 받아들이자니 높은 제조원가가 떠올라 마뜩잖고, 등을 돌리자니 고객이 눈에 밟힌다. 그는 대전에 내려가서 경영진과 의논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영업사원을 뽑는 일도 화급하다. 회사 직원은 현재 40명이 넘지만 영업맨은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여지껏 정부의 연구용역으로 경영을 꾸렸으니 영업맨들의 수요가 거의 없었던 탓이다. 사실 그도 유명 제약회사에서 영입된 지 얼마되지 않았다. 15년 가까이 마케팅 분야에서 일한 경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옮긴 것. 그로서는 로봇을 만드는 벤처의 장래를 믿고 과감히 이 바닥에 뛰어든 셈이다. 회사 형편상 소수의 능력 있는 영업맨을 선발해야 하는 게 고민이다. K실장은 똘똘한 영업맨을 뽑아 ‘찾아가는 마케팅’을 하려고 구상 중이다. 타워팰리스 등 고급 주거지를 대상으로 부지런히 뛰어다닐 생각이다. 백화점 입점이 녹록지 않아 발품은 더 중요해졌다. 다행스러운 점은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욕만은 넘친다는 것이다. 벤처기업이 겪는 가장 큰 애로점이 마케팅이다. 우수한 제품을 내놓아도 시장에 안착하기는 어렵다. 해당 업체의 준비가 부족한 면도 있지만 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관행이나 인재의 대기업 편중 등 구조적 문제도 심각하다. 항상 그래왔다고 자위하기에는 벤처기업인들이 겪을 좌절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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