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요 필리핀대통령 이라크 철군 '위험한 승부수'

이라크 문제를 놓고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대통령이 '위험한 승부수'를 시도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아로요 대통령은 10일 대통령대변인 성명을 통해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이라크에 파견한 51명의 군.경병력을 주둔 종료시한인 다음달 20일까지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또 대체병력이 이라크에 다시 파견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추가파견 계획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발표 직후 아로요 정부는 이라크 무장단체에 인질로 억류돼 참수위협에 처했던 자국 근로자 안젤로 드 라 크루즈(46)씨의 석방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특히 패트리시아 산토 토머스 노동장관은 이그나시오 분예 대통령대변인의 말을 인용, "납치된 필리핀인이 아직 우리 수중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곧 바그다드의 한호텔로 옮겨져 우리측에 인도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인질석방을 기정사실화했다. 이 발표 직후 필리핀 국민은 이번 인질석방이 취임 한달도 안된 아로요 대통령의 '첫 성공작'이라며 환호한 반면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대(對)이라크정책과 관련해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라며 당혹함과 함께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랍어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가 이라크 내 '이슬람군'에 연결된 '할레드이븐 알-왈리드 여단'의 말을 인용해 인질이 석방되지 않았으며, 필리핀 정부가 자국군 병력 철수의지를 24시간 이내 증명하지 않을 경우 인질을 처형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도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자국민 석방을 위해 미국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과시, 지지기반을 강화하려던 아로요 대통령의 승부수는 알 자지라방송의 이 보도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질이 석방되기도 전에 이를 경솔하게 기정사실화함으로써 국내외의 웃음거리는 물론이고 자칫 인질의 생명마저 더욱 단축하게 하는 역효과를 냈다는 비난도 자칫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교적으로도 아로요 대통령은 혼선에 혼선을 거듭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득은커녕 실(失)이 더 많게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모로이슬람해방전선(ML), 제마야 이슬라미야(JI) 등 필리핀 내 반정부, 반미 이슬람무장단체에 대한 아로요 정부의 미온적인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3천만달러의 군사원조 철회 등을 발표한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문제와 관련한 아로요 대통령의 이번 '물타기' 시도를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군사지원은 물론이고 가장 시급한 현안인 경제회복을 위한 미국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필리핀에 대해 미국이 무역보복, 국제금융단체 등을 통한 차관공여거부나 삭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손보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게 관측통들의 예측이다. 결국 이번 사태와 관련, 아로요 대통령의 승부수가 대내외적으로 소기의 성과를거두지 못한 채 '정치외교적 곡예'로 그칠 경우, 새로 출범한 아로요 대통령에게는'뼈아픈 정치외교적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하노이=연합뉴스)김선한 특파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