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기 회복과 우리경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 활력이 저하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좋아지면 그 훈풍을 타고 고도성장을 했던 우리 경제의 탄력적인 모습이 최근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경제성장률은 지난 1ㆍ4분기 3.7%에서 2ㆍ4분기에는 1.9%로 급락했지만 세계 경제 여건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미국 경제는 여전히 부진한 상태이긴 하지만 2ㆍ4분기에 전분기 대비 2.4% 성장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중국 경제는 사스의 여파로 2ㆍ4분기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상반기 전체로 8.2%나 성장하며 아시아 지역의 성장을 주도했다. 아직 단기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세계 경제 여건에 비해서 우리 경제의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중요한 경제 불안 요인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소비는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 변수였다. 대체로 수출이 잘되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고 가계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소비도 호황을 보였다. 자연히 경기에 후행하고 소득에 비례해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가계대출, 신용카드 서비스 등 가계신용이 발전하면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처럼 소비가 소득 증가율 이상으로 늘어나며 경기 회복을 주도하는가 하면 올해처럼 수출이 호조를 보여도 극도의 부진을 겪으며 경기 하강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소비는 금융기관의 신용공급, 가계부채의 부실화, 부동산 가격 등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 대외 여건과 관계없이 경기 변동을 야기하는 불안요인이 될 것이다. 투자의 성장견인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도 세계 경제와의 동조화가 약해지는 이유이다. 외환위기 이전에 기업들의 과다투자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과소투자가 문제가 되고 있다. 수요가 다소 회복되고 투자압력이 발생하더라도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고 있다. 기업들의 행태가 성장을 중시하는 과감한 투자 패턴에서 안정과 수익성을 중시하며 리스크에 민감한 보수적인 투자 패턴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노사분규가 급증하고 기업을 범죄집단시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투자대상지로 중국에 자꾸 눈을 돌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과거처럼 수출이 살아난다고 투자가 급증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수출활력도 과거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 우선 전체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수출점유율은 2.5%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다. 반면 중국의 점유율은 지난 수년간 급등세를 보여 5.3%로 높아졌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우리의 시장점유율은 3% 내외에서 정체되어 있는 반면 중국의 점유율은 지난 2000년 8%에서 올해에는 11%로 급등했다. 물론 우리의 중국수출이 급증하면서 수출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보다 세계경제의 성장을 활용하는 능력이 약화내지 정체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점유율 면에서만 아니라 단가 면에서도 수출의 취약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96년에 비해 우리의 수출 가격은 무려 40% 가까이 하락했다. 미국과 일본의 수출 단가도 하락하긴 했지만 우리에 비해 훨씬 하락 폭이 작았다. 일차적으로는 세계적으로 큰 폭의 가격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IT분야에 수출상품이 집중해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고유의 기술우위를 바탕으로 가격결정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수급상황에 따라 가격하락 압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범용제품 위주의 수출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성장 피로감은 과거와 같이 외부환경이 개선된다고 쉽게 사라질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이 확산되면 문제는 더욱 고착될 수 있다. 경제에서도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러기 전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배보다는 성장에 맞추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데 전력을 다해야 우리 경제는 최근의 부진을 씻고 성장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문석(LG경제연구원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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