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외국투기자본과 정부 역할

전삼현<숭실대 법학과 교수ㆍ기업소송연구회 회장>

연말결산을 앞두고 외국인 주주들이 우선주를 집중 매입한 후 경영권을 협박해 이를 고가로 소각할 것을 요구하는 등 주가차익을 노리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날로 급증하고 있어 올해 6월 말 현재 43%를 넘었다. 그 결과 현재 헝가리ㆍ핀란드ㆍ멕시코에 이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외환위기 이전 10%대에 불과했던 상황과 비교해보면 초고속 개방을 한 셈이다. 자본시장의 개방이 가져다주는 장점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경쟁을 뚫고 성장해온 우리 기업이 정체도 불분명한 외국 투기자본에 하나 둘씩 팔려나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속수무책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 연기금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단지 미봉책에 불과할 것으로 생각된다. 즉 근본적으로 우리 자본시장에서 우리 기업들 스스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러한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과 주가차익을 노리기 위한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 그리고 정부에서는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외국 투기자본의 국내 주식시장 침투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최태원 SK 회장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 이사자격을 박탈하고자 임시주총을 요구한 소버린과 같은 정체불명의 외국 투기자본이 과연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시장의 통제자인가. 이미 주지된 바와 같이 소버린은 이익배당과 주가차익만을 노리는 간접자본, 즉 투기자본에 불과하다. 더욱이 우리 기업의 경영권을 노리는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 주인이 챈들러라는 성을 가진 뉴질랜드 출신의 40대 형제라는 것과 이들이 주로 러시아 등 신흥 개발도상국이나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국가에서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 투자한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저명인사 중 상당수가 이들에 포섭돼 사외이사의 물망에 오르내린 바 있다. 이미 지난 3월 SK 주총에서 소버린은 이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자 했으며 집중투표제를 도입해 SK에 대한 경영지배권을 장악하고자 시도한 바 있다. 당시 각계 전문가들도 내년 주총에서는 소버린이 경영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SK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버린이 경영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소버린측 국내 저명인사들의 변이다. 그러나 이들의 명분은 단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궤변에 불과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대기업들의 경영권은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들의 무분별한 지배구조 개선 요구와 이를 이용한 외국 투기자본의 사냥감이 되고 말았다.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선임된 인물이 과연 얼마만큼 국내기업의 경영효율을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외국 투기자본이 노리는 것은 회사의 발전이 아니라 감자ㆍ고액배당ㆍ자산매각 등을 통해 단기적 수익을 챙기고 기업을 만신창이로 만든 후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국부가 유출되도록 조장하거나 수수방관하고 있다면 외국 투기자본의 협조자가 될 뿐이다. 연기금을 통해 국내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내기업들 스스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의원입법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목적이 아무리 정당해도 외국 투기자본의 힘을 빌려 국내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은 그 수단이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가 터진 지 7년을 맞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외국 투기자본에 의해 농락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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