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선종소림음악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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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작업이 완료된 토용의 모습. 병마 용갱 2호갱에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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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시성의 병마용갱. 보병군단 6,000여점의 토용으로 이뤄진 1호갱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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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운대산 홍석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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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천별장 화청지에 전시된 양귀비 전신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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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에게는 세 가지 소원이 있다. 한 가지는 수십만 자에 이르는 한자를 모두 배우는 것, 또 한 가지는 중국의 모든 음식을 먹어보는 것, 마지막 한 가지는 중국 땅을 빠짐없이 누비는 것. 중국인들이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라고 한다.
세계 면적의 15분의 1을 차지하고 남한의 100배에 이르는 957만2,900㎢의 중국 대륙은 한평생을 다 들여도 빠짐없이 밟아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하다. 하지만 모든 땅을 밟아본다고 그 땅을 온전히 알게 되는 것도 아닐 터. 대신 중국 역사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핵심 여행지를 꼽아 돌아본다면 중국 대륙을 모두 밟아본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중국 속담 중 ‘중국의 100년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로, 1000년을 보려면 베이징으로, 3000년을 보려면 시안으로, 5000년을 보려면 허난을 가봐야 한다(一百年歷史看上海, 一千年歷史看北京, 三千年歷史看西安, 五千年歷史看河南)’는 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시안이 있는 산시성(陝西省)과 뤄양, 정저우 등 고도가 있는 허난성(河南省)은 중국 대륙의 중심으로, 뿌리를 찾고자 하는 중국인은 물론 수천년 전 꽃피웠던 중국 문명에 호기심을 가진 외국인도 살아 생전 꼭 한번 찾고 싶어하는 곳이다.
◇시안, 진시황ㆍ양귀비 등 역사의 주인공 한 자리에
‘죽은 자가 산 자를 먹여 살리는 땅’. 현지 가이드 김동호 씨는 시안(西安)을 이렇게 표현했다. 진(秦)을 비롯해 서주(西周)와 서한(西漢) 수(隋) 당(唐) 등 중국 역사를 거쳐간 13개 왕조의 수도였고 BC 21~11세기 수도의 위상을 누려온 천년고도이기에 진시황릉, 병마용 등을 비롯 지난 시대를 풍미한 황제의 무덤과 유물, 유적지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시안에서 3m 깊이로 땅을 파면 당나라 유물이, 5m를 파면 한나라 유물이, 9m를 파면 진나라 유물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증명하듯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병마용갱은 세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황제들의 별장이자 양귀비와 당 현종이 사랑을 나눴던 온천별장 화청지는 아파트를 짓다가 발견됐다.
시안시에서 30㎞가량 떨어진 여산(驪山) 자락에 위치한 병마용갱은 총 8,000여점의 토용이 묻혀있던 곳이다. 사후 세계는 지상 세계의 재현이라는 세계관을 믿었던 진시황은 왕릉을 지키는 특공대로 토용을 빚었고 능묘와 용갱 사이에 1.5㎞의 지하통로까지 건설했다.
하지만 74년 발견 당시 발굴 기술이 떨어져 병마용에 칠해져 있던 색소는 햇빛을 보는 순간 날아가 버렸고 얼굴이나 팔, 다리도 크게 훼손됐다. 이에 발굴 작업의 한계를 느낀 중국은 1985년 발굴작업을 중단했다.
그런데 지난 6월 중국 당국이 시안을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병마용 발굴 작업 재개를 선언했다. 작업 재개 후 사두마차 2대와 채색된 병마용들이 새로 나왔고 작업이 모두 완료될 경우 보병부대로 이뤄진 1호갱에서만 4,000여점이 추가로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1호갱에 들어서자마자 복원작업을 마친 2,000여점의 토용이 위용을 드러내고 뒤편으로는 복원작업이 한창인 토용들이 줄지어 서있다.
아직까지는 모든 토용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으나 역사 기록에 따르면 토용은 각각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자세도 천차만별이다. 머리 모양이나 의복 모두 지위고하에 따라 디자인을 달리해 배가 나오고 머리를 뒤로 묶은 토용은 대장, 두꺼운 갑옷을 입으면 보통 병사, 얇은 갑옷이라면 상관에 해당한다.
지휘본부에 해당하는 3호갱을 거쳐 2호갱 돌격부대에 이르면 완벽하게 복원된 토용과 당시 모든 토용이 손에 쥐고 있던 실제 무기가 전시돼 있다. 토용의 세밀하게 땋은 머리, 미끄럼방지가 된 신발 밑창까지 드러나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황제들이 온천욕을 즐기며 겨울을 났고 양귀비와 당 현종이 사랑을 나눴다던 별장 화청지 역시 시안을 찾은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60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겨울에도 43℃를 유지하며 시간당 114톤의 온천수가 나오는 화청지는 서주(西周) 유왕(幽王) 때부터 이곳에 탕을 만들었고 총 9명의 황제들이 이곳을 피한지로 삼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아 옥빛이었던 욕탕은 모두 회색으로 변해 옛날의 화려함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북두칠성 모양으로 생긴 성신탕에는 벽을 따라 당 현종과 양귀비가 35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11년간 나누었던 애틋한 사랑을 45개의 그림으로 표현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운대산, 허난의 5,000년 역사 능가하는 자연유산
허난성은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의 발원지로 꼽힌다. 중국 최초의 왕조 하나라부터 20여개 왕조와 200여명의 왕들이 도읍을 정했던 허난성은 산시성 시안과 함께 역사문화탐방 코스로 연계할 수 있는 곳이다.
허난성을 찾는 이들은 불교신자이거나 ‘삼국지’의 열혈팬, 혹은 소림무술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특히 많다.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용문석굴(龍門石窟)과 관우의 머리가 묻힌 관림, 중국 무술의 본산지 소림사가 모두 허난성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문화유산도 큰 볼거리지만 허난성의 필수 볼거리를 하나만 꼽으라면 장가계만큼이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운대산(초작)이다. 정저우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운대산은 붉은색 협곡이 이어지는 홍석협의 경치 때문에 중국판 그랜드캐니언으로 꼽힌다.
셔틀버스 수십개 노선이 홍석협 입구부터 산 정상까지 이어져 산행은 어렵지 않다. 도보 1시간 코스의 홍석협은 찌는 여름에도 그늘이 져 시원하며 푸른 물이 장쾌한 소리를 내며 쏟아져 마음까지 서늘해진다. 다만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명산 중에 명산으로 꼽히다 보니 2명이 겨우 설만한 좁은 절벽길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는 경우가 많아 보통은 2시간, 많게는 5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황산, 화산, 항산, 태산과 함께 중국 5악으로 꼽히는 숭산도 허난성에 있다. 숭산은 산 자체도 유명하지만 한국인들에겐 중국 무술의 기원으로 꼽히는 소림사가 있는 산으로 더욱 유명하다.
제1의 선종 사찰이자 소림파 무술의 발원지인 소림사에선 매일 소림무술쇼가 펼쳐지는데 이보다 더 큰 볼거리는 장이머우 감독이 2억3,000만원의 제작비를 들여 직접 연출했다는 선종소림음악대전이다.
매일 밤 열리는 이 공연은 밤하늘의 별과 어우러진 숭산이 무대다. 실제 산을 배경으로 총 500여명의 배우들이 등장해 공연을 펼치는데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사방에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수악, 목악, 풍악, 광악, 석악 등 5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는 불교 정통 음악 공연으로 매일 밤 8시반부터 공연이 시작된다.
■ 여행정보
▲ 대한항공은 지난 5월27일부터 인천~시안 노선에 149석 규모의 B737-800 기종을 투입해 주 5회 신규 취항한다. 출발편은 오전 9시 2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현지시각 11시20분 시안에 도착하고 돌아오는 편은 낮 12시20분 출발해 오후 4시 인천에 도착한다.
▲ 산시성, 허난성 지역을 여행하는 적기는 단연 가을이다. 여름철은 건조하나 태양이 뜨거운 편. 10월초는 북경절, 노동절 등이 있어 중국인이 많이 찾는 시기이므로 10월 중순부터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