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내년에 징수할 과징금 등을 올해보다 15% 늘려 잡아 기업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경영이 어려운 기업이 많은데 내년에 7,000억원가량을 징수하겠다니 이해가 안 간다. 정부와 정치권의 잇단 경제민주화 입법과 경제활성화 법안처리 지연으로 움츠러든 기업들을 세외수입 확충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업활동을 위축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약속과도 배치된다.
물론 공정위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연간 수조원씩 세수가 구멍 나는 판에 한푼이라도 세외수입을 늘리라는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내년 일반회계 세외수입 중 3조6,622억원을 벌금ㆍ과징금ㆍ몰수금ㆍ과태료로 벌어들일 계획이다. 주로 일반국민을 상대하는 경찰청은 올해보다 2,000억원가량 줄어든 반면 공정위ㆍ방송통신위ㆍ금융위ㆍ국세청ㆍ관세청 등 기업 비중이 큰 기관은 늘려 잡았다. 공정위가 지난 5년간 기업 과징금 6조9,000억원 중 50% 이상을 깎아줘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비판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과징금 감경사유를 줄이고 감경비율을 크게 낮추는 방향으로 관련 고시를 개정해 내년 6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좋지 않아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데 있다. 공정위가 세외수입 목표달성을 위해 종전보다 적극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고시 개정으로 실제 부담액마저 커지면 법정다툼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처분 등 행정조치에 대한 소송 제기율은 지난 2009년까지 한자릿수에 머물다 지난해 12.7%로 높아졌다. 과징금 폭탄을 맞은 것도 억울한데 막대한 소송비용까지 이중삼중으로 돈을 쏟아 부어야 할 판이다. 전부승소율이 60%대에 그치는 공정위 입장에서도 패소 때 이자까지 붙여 돌려줘야 할 금액이 커진다. 정부는 경기활성화와 고용률 제고를 위해 기업에 줄기차게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규제ㆍ제재의 칼날을 휘두르는 엇박자 행보를 그만둬야 한다. 경제가 살아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