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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나라가 기본이다. 자기만 잘살아보겠다는 것은 기업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국가와 사회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기업이 있다. 참다운 기업인은 거시적 안목으로 기업을 발전시키고 국부 형성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기업가정신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은 지난 1976년 4월 서울경제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기업가정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기업은 인류와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업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호암의 '사업보국(事業報國)'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는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된 국가산업의 재건을 위해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소비물자를 수입에만 의존하면 언제까지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믿음에서다. 호암은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해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을 수입품의 3분의1 가격에 공급하며 국민의 생활고를 덜어주는 데 일조했다.
호암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했던 모직사업에도 진출했다. 그는 훗날 "일신의 안락을 위해서는 제일제당 설립으로 충분했을 것이나 신생 조국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찾고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호암은 1970년대 삼성이 반도체사업에 진출할 당시 주변의 수많은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이들 사업은 오늘날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든든한 성장엔진이 되고 있다.
◇한국의 고속성장 일군 '산업보국' 정신=2011년 세상을 떠난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싸고 좋은 품질의 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정신으로 철강산업을 일궈내 한국 산업화의 기초를 닦았다. 포스코의 역사가 한국 경제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1968년 당시 포항제철 사장 취임과 동시에 '국내 최초의 종합제철소 건설'이라는 임무를 받았다. 자본과 기술은 물론 경험과 자원도 전무했지만 그는 제철보국의 신념 하나로 밀어붙여 결국 철강 불모지에서 한국산 쇳물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철강은 이후 대한민국을 자동차ㆍ조선ㆍ전자 강국으로 키워낸 밑거름이 됐다.
1978년 중국의 최고 실력자이던 덩샤오핑이 신일본제철 회장에게 "중국에도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는 대답을 듣고 한동안 중국에서 박태준 연구 열풍이 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임직원들에게 "항상 애국심을 갖고 일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한진그룹의 창업주 조중훈 회장 역시 수송사업을 통해 한민족의 길을 열겠다는 '수송보국(輸送報國)' 정신이 창업이념이 됐다. 조 회장은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 인수 부탁을 받았다. 대한항공공사는 당시 동남아 11개국 항공사 중 꼴찌이자 금융부채만 27억원에 달하던 부실 덩어리였다.
하지만 조 회장은 국적기사업은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이끌어야 한다는 소명하에 정부의 요청을 수락했다. 조 회장이 항상 가슴속에 품어온 '수송보국'의 유훈은 오늘날 한진그룹이 전세계 하늘과 바다ㆍ육지를 누비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밑바탕이 됐다.
'화약 없이 산업근대화를 이룬 나라는 없다'는 신념 아래 자체기술로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나섰던 한화그룹의 창업주 김종희 회장도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혼란기에서 큰돈을 벌 수 있던 소비재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간산업을 키워내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김 회장은 위험도가 매우 높은 화약사업을 시작으로 석유화학ㆍ기계산업 등 경제발전의 근간이 되는 사업에 집중 투자해 우리나라 기간산업의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전세계를 누비며 국격을 높인다=과거 창업 1세대들이 '산업보국'의 정신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왔다면 오늘날의 기업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열심히 발로 뛰며 국격을 높여가고 있다. 영국의 브랜드컨설팅회사인 '브랜드파이낸스'가 지난해 세계 500대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한 결과 삼성은 2011년 18위에서 6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처음으로 '톱10'에 진입했다. 반면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과 코카콜라는 7위와 8위로 밀려났다.
2011년 230위였던 현대자동차는 무려 167계단을 수직상승해 63위에 올랐으며 LG전자도 168위에서 87위로 순위를 끌어올리며 100위권에 진입했다. 이 밖에 기아자동차는 397위에서 195위로 올랐고 SK는 416위에서 277위로 순위가 크게 상승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던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다.
이처럼 해외 무대에서도 인정 받는 국내 기업들의 활약상은 곧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과 LGㆍ현대차를 필두로 전세계를 누비는 우리 기업들이 점차 늘면서 외국인들은 그동안 이름조차 생소했던 '코리아'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브랜드전문가 데이비드 아커 버클리대 교수는 "글로벌 역량을 갖춘 기업들을 통해 경쟁력 있는 국가 브랜드가 만들어진다"고 역설했다. 결국 전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오늘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일등 공신인 셈이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기업들이 처한 환경은 그리 녹록지 못하다. 블룸버그가 지난해 3월 세계 160개 국가 및 자치도시를 대상으로 '가장 기업하기 좋은 곳'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29위에 머물렀다. 아시아 국가 중 홍콩(1위), 일본(7위), 싱가포르(9위)는 상위 10위권에 올랐고 중국(19위)도 우리보다 순위가 앞섰다. 우리나라는 사업 초기비용과 더불어 사업을 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각종 정부 규제가 포함된 기업 정착비용이 많이 든다는 지적을 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기업 때리기가 한창이지만 정작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무대를 누비면서 묵묵히 국격을 높여가고 있다"며 "지금까지 기업이 한국의 브랜드를 이끌어왔다면 이제는 정부가 국격과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여 기업 경영에 도움을 줘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