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무술, 할리우드 액션물 점령

할리우드 중심부에 동양 무술이 우뚝 서고 있다. 할리우드에서의 동양 무술은 1970년대 액션 배우 이소룡을 시작으로 배우 성룡, 영화감독 이안 등으로 이어지며 중요한 코드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 하지만 홍콩 액션을 앞세운 영화들은 중소규모 제작비를 바탕으로 한 `B급 `영화였다면 최근엔 할리우드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초대형 액션 영화에 동양 정서가 잇달아 도입되고 있어 구별된다. 21세기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류를 동양 무술이 주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21일 개봉)이나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한 `라스트 사무라이`(내년 1월9일 개봉예정)는 모두 동양 무술에 근거를 둔 대형 영화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했던 `툼레이더`나 키아노 리브스 등이 등장한 `매트릭스` 시리즈 역시 동양 무술의 흔적을 숨기긴 어렵다. 대역 없이 영화에 임한 안젤리나 졸리는 쿵후 검도 킥복싱 패러 글라이딩 등 온갖 무술 훈련을 섭렵했으며, 1편에서 다소 뻣뻣한 동작을 선보였던 키아노 리부스 역시 영화 `와호장룡`의 무술감독과 만나며 동양 무술 연마에 공을 들였다. SF, 총기, 폭탄, 스파이 등 서양 정서에 바탕을 둔 액션 요소들을 `우려 먹을 대로 우려먹은` 할리우드가 동양 무술에서 새로운 흥행 요소를 찾았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대답. 특정 국가에 치우친 무술 보다는 동양 무술의 여러 특징을 한데 모은 `잡탕식` 무술을 선보이는 점도 또 다른 특징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Kill Bill)=`펄프 픽션` `저수지의 개들` 등 독특한 영상 언어를 선보인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5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청부살인업체 여자 조직원(우마 서먼 분)이 자신을 배신한 단체 구성원들을 찾아가 한명씩 복수하는 과정을 다룬다. 금발 여성의 복수극이건만 주인공은 총대신 검을 든다. 또한 감독 자신이 `스튜 같은 영화`라 표현했을 정도로 온갖 동양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현란하다. 우마 서먼이 입고 등장하는 노란색 의상마저 `이소룡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바로 그것이다. 1편의 경우 일본 야쿠자 두목 오렌 이시이(루시 루 분)와의 `청엽옥` 결투신이 가장 중요한 장면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정통 일본 무도 라기보다는 여러 동양 무술이 `뒤범벅`된 무술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할리우드 영화를 장식했던 동양 무술이 다소 `무해한` 무술 대결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시종일관 `검이 부르는 선혈`로 가득 차 있다. 총기를 `초월`하는 선혈과 찌르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는 잔인함 탓에 국내에선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저 그런` 액션 영화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작가적 개성과 톡특한 영상언어가 숨쉬고 있는 수작이다. 영화 제목은 단체의 두목이기도 한 `빌`을 `죽이라`는 뜻. 원래 한 편으로 예정됐으나 첫 편에서 `고작`두 명을 죽이고 그친 탓에 빌을 포함한 나머지 이들의 이야기는 현재 후반작업 중인 2편(내년 2월 경 미국 개봉 예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스트 사무라이=`킬 빌`에 타란티노 감독이 있다면 `라스트…`에는 톰 크루즈가 있다. 내년 1월 9일 경 국내에서 개봉할 `라스트…`는 메이지 유신 무렵 일본에 도착, 정통 사무라이 정신에 감명을 받게 된 한 미국 용병의 이야기를 그린다. 때문에 톰 크루즈, 빌리 코놀리, 토니 골드윈 등 할리우드 배우 외에도 세이조 후쿠모토 하라다 마사오 이가와 토고 등 상당수의 일본 배우가 등장한다. 때는 1870년 일본. 전통 막부가 무너지고 천황권이 되살아 나는 시기에 미 남북전쟁 참전 군인인 알그렌 우드로 대장이 일본에 도착한다. 천황 편에 선 일부 사무라이들 과 함께 했던 대장은 부상 당해 적들에 붙잡히면서 점차 갈등하게 된다. 지도자 카수모토 등에 의해 전통 사무라이의 도의를 배우며 대의에 대해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 감독을 맡은 에드워드 즈윅은 브레드 피트가 주연한 `가을의 전설` 걸프전 여장교를 다룬 `커리지 언더 화이어` 등을 선보인 인물. 제작진은 메이지유신 경 일본 사회에 대한 고증을 약속하고 있지만 역시 정통 일본 무술이라기 보다는 `할리우드가 이해한` 동양 무술일 수 밖에 없다. 국내 개봉을 앞둔 일본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와 시대 배경이 비슷하다. <김희원기자 heew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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