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고구려사와 관련, 역사교과서에 왜곡 내용을 싣지 않는 등 우리측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중국측은 그러나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고구려사 부분을 복원하라는 우리측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ㆍ중 양국은 23일 두 차례 외교차관 회담을 비롯, 9시간이 넘는 릴레이협상을 갖고 중국 정부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관련해 5개항의 구두 양해에 합의했다고 외교통상부 고위당국자가 24일 밝혔다. 구두양해 사항에는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 문제가 양국간 중대현안으로 대두된 데 유념 ▦역사문제로 한ㆍ중 우호협력 관계의 손상 방지에 노력하고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 발전에 노력 ▦고구려사 문제의 공정한 해결을 도모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 정치문제화 방지 등이 포함됐다. 또 ▦중국측은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 대한 한국측의 관심에 이해를 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감으로써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방지 ▦학술교류의 조속한 개최를 통한 해결 등이 들어 있다.
그러나 중국측은 외교부 홈페이지의 고구려사 부분을 복원해 달라는 우리측의 요구는 거절함으로써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겨놓았다.
중국이 이날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해 기존입장에서 한 발짝 후퇴한 입장을 보인 것은 갈등이 오래 지속될 경우 득 될게 별로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는 26일 국가서열 4위인 자칭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방한에 앞서 어떤 형식으로든 고구려사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측은 또 한ㆍ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중장기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해 한ㆍ미ㆍ일 관계가 더 강화되면 미국의 중국 포위전략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급한 불은 껐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지적이다. 우선 중국 당국이 ‘고구려사는 한국사’라고 인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란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중국 당국이 약속대로 정부 차원의 왜곡 시도는 하지 않겠지만, 관의 지원을 받는 학계와 민간 차원의 왜곡 시도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또 중국에 비해 고구려사 연구진이 취약하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이를 극복하려면 국내의 고구려사 연구를 활성화하는 한편 남북한간 학술교류를 통해 학문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번 합의에서 그 동안 줄곧 문제가 돼 왔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관련한 부분은 빠져있어 앞으로 이와 관련한 지속적인 감시와 연구활동이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