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일본 경제단체 공동주최 오찬 연설
입력 2003.06.08 00:00:00
수정
2003.06.08 00:00:00
일본을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8일 낮 도쿄 시내 경제단체연합회(經團連) 회관에서 일본경제단체연합회, 일본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同友會), 일본무역회 등 경제 4단체와 일.한 경제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오찬간담회에 참석, 연설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국은 동북아시아 물류와 연구개발, 금융의 허브로 발전하기 위한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이를 통해 동북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한.일간 투자와 기술협력을 더욱 확대해야 하며, 특히 중소기업과 부품.소재 분야의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양국의 기업들이 서로의 장점을 결합하여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찬에는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경단련 회장(도요타 회장), [무로후시 미노루](室伏捻) 商議 특별고문(이토cb 상사 회장), [키타시로 가쿠타로](北城 恪太郞) 경제동우회 대표간사, [미야하라 켄지](宮原賢次) 무역협회 회장(스미토모 상사 회장), [세토유조](瀨戶雄三) 일 한 경제협회장(前 아사히맥주 회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대통령 연설문
존경하는 [오쿠다 히로시](奧田 碩)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
[무로후시 미노루](室伏 穗) 일본상공회의소 특별고문,
[기타시로 카쿠타로우](北城 恪太郞) 경제동우회 대표간사,
[미야하라 켄지](宮原 賢次) 일본무역협회 회장,
[세토 유조](瀨戶 雄三) 일.한 경제협회 회장,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경제계 지도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를 이끌고 계신 지도자들께서 한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이처럼 따뜻하게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과의 만남을 매우 기쁘고 뜻깊게 생각합니다.
한국 속담에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끼리 가깝게 지내다 보면 먼 데 있는 친척보다 더 친하게, 도와주며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국과 일본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저는 두 시간만에 이곳에 오면서 그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한.일 양국은 지리적으로만 가까운 것이 아닙니다. 일본은 한국의 두 번째 교역 상대국이자 투자 유치국입니다. 한국 역시 일본의 세 번째 교역 파트너입니다. 작년 월드컵 때는 많은 일본 국민들이 4강에 진출한 우리 팀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주었고, 우리 국민은 이러한 모습을 보며 진정한 이웃의 정을 느꼈습니다.
존경하는 경제계 지도자 여러분,
저는 어제 [고이즈미] 총리와 만나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한.일 양국은 미래를 향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공동번영을 위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동북아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동북아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무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부산항, 광양항, 인천국제공항과 같은 물류기반도 손색이 없습니다. 앞으로 남북간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면 일본에서 들어온 사람과 물자가 중국과 시베리아를 거쳐 멀리 유럽에까지 가게됩니다. 정보화 수준은 이미 세계 선두권입니다. 한국은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번영에 적극 기여하는 나라가 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의 허브(Hub)`로 발전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물류와 연구개발(R&D),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이러한 구상은 한국 경제는 물론 동북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가게 됩니다. 더 나아가 동북아지역에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는 지난 1월 경단련이 제시한 `동아시아 경제연대 강화` 구상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역내 국가간 협력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경제인 여러분,
한국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막 100일이 지났습니다. 새 정부는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국정원리로 삼고, 이러한 가치를 경제와 사회전반에 뿌리내리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경제는 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그 이전에 비해 훨씬 투명하고 튼튼해졌습니다. 지난 5년간 강도 높은 개혁과 구조조정을 추진해온 결과입니다. 위기가 우리를 변화하도록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자만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지속적인 개혁만이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개혁의 목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기업의 회계제도와 지배구조를 대폭 개선해서 경영의 투명성을 향상시킬 것입니다. 금융부문의 지속적인 구조개혁으로 금융산업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높여나갈 것입니다. 과학기술 혁신과 IT분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첨단산업을 육성해가고자 합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하되, 불공정한 거래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법과 원칙을 적용해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효율적이고 역동적인 시장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지난 `한.일 투자협정` 교섭과정에서 일본 기업인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이 노동조항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 투자한 일부 일본기업이 노사문제로 철수해야 했던 아픈 사례에 대해서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노사관계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법과 질서를 확고히 지키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새로운 노사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노사간 대립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나갈 것입니다. 더 이상 불법과 폭력은 용인되지 않습니다.
저는 노사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했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사 양측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면 대화와 타협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1, 2년 내에 신뢰와 협력의 새로운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한국 정부는 투자하기 좋은 환경,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내기업과 외국기업을 차별하지 않겠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사례를 들어 외국기업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에 저와 함께 온 경제계 인사 가운데 일본인이 한 분 계십니다. 한국의 일본기업인 모임인 `서울 재팬클럽`의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 이사장님이 바로 그 분입니다.
저는 [다카스기] 이사장님을 헌법상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기업을 외국기업이 아닌 우리기업으로 여기고,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원하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마찬가지로, 여기 계신 어느 분이라도 투자에 장애가 되는 제도와 관행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언제든지 적극 검토해서 개선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올해 연초에 `한.일 투자협정`이 발효되었습니다. 양국간 투자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 또한 한국은 올해 하반기부터 `경제자유구역`을 운영해서 외국인의 기업환경과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투자가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
경제계 지도자 여러분,
저는 앞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동북아 경제협력과 안정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입니다.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는 한,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동북아 경제협력의 강화는 결과적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내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가 될 것입니다.
지난 달 저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과,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어제 저는 [고이즈미] 총리와 이 문제에 관한 공동의 해법에 합의하였습니다. 일.미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인식을 공유한 바 있습니다. 북핵 문제는 이러한 한 일 미 3국간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경제인 여러분,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위해서는 먼저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일간에 한 차원 높은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일본 자본주의의 원류로 추앙받고 있는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 선생은 "진정한 상인은 상대방과 자기가 모두 잘 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한.일간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도 그러한 정신을 살려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양국이 지혜를 모으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FTA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진행된 `FTA 産.官.學 공동연구회`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공동연구회가 좋은 성과를 거두어서 FTA 논의가 빠른 시일 내에 정부간 교섭단계로 진전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양국간 투자와 기술협력을 더욱 확대해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한.일 FTA 추진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부품.소재 분야의 협력을 발전시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양국 기업이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서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한.일 재계회의`, `한.일 경제인회의`, `한.일 민관합동 투자촉진협의회`와 같은 협의채널도 더한층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자유로운 인적교류를 위해서 `비자면제협정`의 체결과 서울 도쿄간 셔틀 항공편의 운항도 추진해나가야 하겠습니다.
경제계 지도자 여러분,
세계경제의 회복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우리 두 나라의 경제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이웃간의 협력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우리 함께 힘을 모읍시다. 동북아 공동번영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희망찬 내일을 선물합시다.
아무쪼록 오늘 이 자리가 양국 경제계간의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건승과 양국 경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용수, 고승일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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