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 인생과 하나 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우리 음악"

'한국고전의 비밀스런 탐독' 피날레 장식한 채수정 명창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으로 통하고 감성적으로 예민한 우리가 먼저 우리의 것을 알아야 합니다. 깊고 애잔한 남도의 소리와 느릿하지만 힘이 있는 강원도의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바로 한국사람입니다. 우리의 소리에 관심이 있어 스스로 찾아 온 여러분들이 바로 한국 문화의 힘이지요.”

13일 서울시교육청 동대문도서관에서 열린 ‘한국고전의 비밀스런 탐독’의 피날레를 장식한 채수정(43ㆍ사진) 명창(채수정판소리연구소장)은 이번 강의의 의미를 이같이 소개했다.

‘판소리 1호 박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채 명창은 이화여대에서 판소리로 박사를 마친 후 2000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석사에 입학해 고전과 판소리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집중했다. 이른바 이론과 실기가 가능한 국내 몇 안되는 판소리계 명강사다. 강사 보다는 명창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그는 KBS국악대상(2009), 임방울 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2011) 등을 수상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판소리의 이론과 실제’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날 강의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그는“판소리는 문학ㆍ연극ㆍ음악이 어우러진 융복합 장르로 득음만 한다고 제대로 소리를 내기 어렵다”며 “적벽가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판본의 삼국지를 읽고,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춘향전을 문학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문학, 음악, 연극 등 한 분야만 알아서는 절름발이가 될 수 밖에 없다”며 국문학을 전공한 배경을 설명했다.

채 명창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부채를 쥔 채 단가 ‘사철가’ 민요 ‘진도 아리랑’ 판소리 ‘춘향가’ 등을 사례로 들며 서양 음악과 어떻게 다른지를 자세하게 풀어나갔다.

“사철가는 12박자로 이루어진 중모리 장단으로 가장 어려운 장단 중 하나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기운이 솟구치는 여름, 거두어들이는 가을, 그리고 서로 풀어주는 겨울 등 우주의 원리와 음양의 이치가 스며들어있는 것이 우리 음악의 기운이자 철학이지요. 숙종때 제작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가 중모리의 출발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지요. 서양음악은 정확한 음을 추구하지만 우리는 음을 흔들었다 쥐었다 꺾었다 표현방법이 자유자재이며 감성이 풍부하지요.

채 명창은 장단과 가락에 대한 이론적 설명에 이어 수강생들이 사철가, 진도 아리랑 등을 직접 따라 부르면서 우리 소리의 맛을 익힐 수 있도록 이끌었다. ”자 한번 따라 해 볼까요.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한심허다~.“

채 명창은 우리 소리 감상법인 추임새 넣는 방법도 소개했다. ”추임새는 고수나 소리꾼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으로 우리 음악은 객석과 무대가 혼연일체가 되어있는 구성이지요. 부채를 오른쪽으로 펼치면 얼씨구, 오른쪽 손을 움직이면 좋다, 잘한다. 아문, 그렇지 등으로 박자를 넣으면 됩니다.“

지방행정연수원, 교사연수 등 우리 소리에 대한 강의 요청을 뿌리치지 않고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어디든 발벗고 나서는 그는 ”수강생들이 ‘우리 음악이 재미있구나, 귀한 것이구나, 그리고 평생을 바쳐 공부할 만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소리 공부는 인문학적ㆍ음악적 교양을 쌓고 더불어 단전에 기운을 쌓아 소통하는 발성법으로 신체적인 수련도 할 수 있어 내 인생과 합일(合一)할 수 있는 세계“라며 우리 소리가 몸과 마음의 수양 및 수련에 제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동대문 도서관에는 추운 날씨에도 20여명의 수강생이 참석해 우리 음악의 맛을 느끼며 흥겹게 강의에 몰입했다.

서울시교육청과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전 인문학 강좌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이번 강좌에서 채 명창은 영등포평생학습관(12/17), 정독도서관(12/23), 양천도서관(1/24), 고척도서관(2/3) 등에서도 강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개관에서 열리는 이번 고인돌 강좌는 한국고전 외에도 한국건축, 고지도, 예술 속 고전읽기 등 풍성한 인문학강좌가 열리고 있다. 강의신청은 무료이며, 세부 프로그램 내용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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