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바둑 영웅전] 변수가 있었다

제9보(115∼132)



좌변의 접전이 끝났을 때 이세돌은 승리를 확신했다고 한다. 그 이후의 착점들은 일사불란하게 안전위주로 두어졌다. 백16의 보완이 그러했고 백18과 백20도 그러했다. 백22와 24,26도 마찬가지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게 튼튼히 두고 있다. “이건 부자몸조심 정도가 아니라 아예 꼬리를 내려버린 인상입니다. 마치 상대더러 돈을 던지라는 제스처 같기도 해요.”(김성룡) 김성룡은 이번 삼성화재배 결승3번기가 열리기 직전에 박영훈의 우세를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이다. 박영훈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잠룡과 같은 존재이므로 박영훈쪽에 걸고 싶다는 것이었다. 양재호9단 역시 박영훈의 우세를 점쳤다. 한편 조훈현은 이세돌의 우세를 단언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이세돌에 필적할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이세돌이 지존이다.”(조훈현) 검토실에서도, 해설실에서도 이 바둑은 백승이라고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사실은 결정적인 변수가 남아있었다. 검토실 한구석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김지석4단이 흑27을 보고 아쉬워했으니…. “수가 있었어요. 결행하긴 조금 힘들지만 패로 잡으러 가는 수단이 있었어요.(김지석)” 참고도의 흑1로 젖히는 강수가 있었다. 백은 주저 없이 2로 받을 것이다. 쌍패의 형태이므로 백은 물러설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다음 순간 흑에게는 7,9의 수단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백대마는 패에 목숨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팻감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흑이 이 패를 결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패가 승부의 주요 변수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을 대국자 쌍방이 못 보고 그냥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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