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이산가족] 명용덕 할아버지 아내손 차마 못놓고‥
50년간이나 아내와 아들ㆍ딸과 생이별해 가슴을 쳤던 명용덕(83ㆍ서울) 할아버지는 1일 개별상봉에서 아내 리덕실(78)씨에게 "지난 50년간 얘들을 키우느라 그렇게 고생했는데 또 나만 떠나 가야 하느냐"며 울부 짖었다.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에서 전날 단체상봉에 이어 이날 오전과 오후 개별상봉을 한 명 할아버지는 북측의 아내 리씨와 아들 영근(57)씨를 보며 50여년 간 마음 속에 고여있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말았다.
특히 1일 오전 개별상봉에선 50년 간 고이 간직해 왔던 결혼식 사진을 꺼내보이며 추억을 회고하기도했다. 부인 리씨는 결혼식 당시 18살 꽃다운 모습을 모며 '아들ㆍ딸과 함께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지난 50년'이 서러운듯 연신 울먹였다.
명 할아버지는 "지난 50년간 혼자서 아들딸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딸 영숙(61)씨가 병으로 전날에 이어 개별상봉에도 나오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병원에 찾아갈 방법이 없겠는지 안타까워했다.
아들 영근씨는 "어머니가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이 얼마나 많으셨는지 아시느냐"며 "앞으로 계속 편지도 드리고 남쪽의 가족들과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명 할아버지 가족은 이어 점심을 같이 한 뒤 오후 상봉에서는 "만나자 또 이별이 웬일이냐"며 "앞으로 편지도 하고 소식을 주고받아야 한다"며 주소를 주고 받았다. 이어 남측의 4남매가 모아준 500만원으로 장만한 코트와 속옷, 옷감, 시계를 전달했고 특히 아내와 딸 영숙씨를 위해 금반지를 선물했다.
이날 개별 상봉에선 명 할아버지가 남쪽에서 결혼한 아내와 4남매의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하자 아내이씨는 한동안 사진을 외면하다 가슴통증을 호소해 명씨가 준비해 간 우황청심환을 건네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명 할아버지가 28세의 꽃다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11세 딸, 7세 아들과 생이별을 한 것은 1ㆍ4후퇴 직전인 50년 11월 6일로 대동강변에서였다. 평양에서 연탄ㆍ숯 판매업을 하던 그가 인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월남을 결심했던 것.
하지만 새벽 5시 대동강가에 도착한 명씨 가족은 한치 두께로 얇게 언 얼음판과 끊어진 대동강 인도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강을 건너려는 수천명의 인파로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명씨 혼자 부서진 인도교를 기다시피 건너왔으나 이 순간이 50년 이별의 시작이 되었다.
명씨는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신문에서 '부서진 대동강 인도교' 사진을 오려 오늘날까지 평생 간직하며 꺼내 보곤 했다.
입력시간 2000/12/0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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