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열어 남 도우며 희망 키우고 싶어"

서울시 자격증 프로그램으로 새 삶 얻은 노숙인
8개월간 126명 취득… 104명 취업도

이 모(48)씨는 30대 시절 조그만 전자회사의 어엿한 사장이었다. 그러나 사업이 위기에 빠지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고 결국 부도를 맞은 뒤 가정까지 파탄 나 거리로 나앉았다. 10년간 술과 담배에 빠진 채 고시원과 길거리를 전전한 그에게 남은 것은 고혈압과 당뇨뿐이었다.

노숙인 쉼터 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병원 치료를 받으며 금주와 금연을 결심했고 구세군자활주거복지센터로 자리를 옮겨 살다 지난해 서울시 ‘노숙인 자격증 프로그램’을 통해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었다.

이씨는 “돈을 더 열심히 모아 소형 트럭을 사서 고물상을 열고 싶다”며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노숙인들을 고용해 함께 희망을 키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시 양평쉼터에 있는 최 모(53)씨도 이씨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운전면허증을 땄다. 특히 최씨는 면허증 취득과 동시에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물류회사 운전직 취업에도 성공했다. 최씨는 “열심히 일하며 저축도 하고 앞날에 대한 계획도 세워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서울시는 이씨와 최씨처럼 자격증을 따고 싶어하는 노숙인을 지난해 5월부터 지원하고 있다. 3일 시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숙인은 모두 198명. 이 가운데 63.6%인 126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1종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한 노숙인이 81명으로 가장 많았고 대형면허(20명), 2종 보통 운전면허(13명)가 뒤를 이었다. 중장비와 지게차 기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도 나왔다.

노숙인들은 면허증을 활용해 택시기사, 택배, 트럭운전에 도전할 수 있었고 민간기업 33명 서울시ㆍ공공기관 29명 등 모두 104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시는 중장비운전ㆍ미용기능사ㆍ도배기능사ㆍ전기기사ㆍ제과제빵기능사 등 자격증 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며 노숙인을 위한 전문직업상담도 펼치고 있다.

김경호 시 복지건강실장은 “사회와 떨어져 살던 노숙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자격증 취득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취업지원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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