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항공사, 특히 외국의 24개 대형 항공사의 담합에 대해 제재 방침을 정한 것은 그 규모 면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이 외국의 경쟁당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제재를 당했던 것과 사뭇 대조를 이룬다. 공정위의 영역이 그만큼 국제적 분야로 진화했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퀄컴 등에 이어 글로벌 기업과의 계속되는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항공 국제카르텔 지목한 이유는=공정위가 항공사들의 담합행위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것은 제법 됐다. 미국 법무부가 지난 2000년부터 국제 항공사들의 담합행위를 적발, 제재를 가한 것이 동인이다. 국내 양대 항공사는 이로 인해 3억5,000만달러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 받기도 했다. 항공사들이 이번에 제재를 받게 된 혐의는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부가 운임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사실상의 '국제 담합'을 통해 부당하게 가격을 올렸다는 것이다. 우리 경쟁당국이 조사하는 것은 이중 국내에 들어오는 국내외 모든 항공사들의 화물 운임 담합행위다. 공정위는 이를 위해 그동안 외국계 항공사 서울사무소에 대한 전방위 현장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담합 사실을 적발하고 국내 2개 항공사 외에 24개 국제 항공사들에 일제히 제재 방침을 통보한 것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과거 MS 등의 경우 열차례 이상 전원회의를 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도 최종 제재 수위를 확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조기 결정은 힘들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를 볼 때 과징금 규모는 최소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경우처럼 경쟁당국의 조치에 따라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국내외 전반에 걸쳐 파장이 생각보다 커질 수도 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우리 기업들=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주목 받는 것은 사실 업종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경쟁당국이 세계 유수의 기업들에 한꺼번에 제재를 가하는 사실상의 첫 사례가 되는 것이 더 관심을 모으는 부분이다. 사실 우리 기업들은 외국 경쟁당국들의 '봉'이나 다름없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카르텔 제재로 벌금을 부과 받은 규모만 1조7,000억원에 이른다. D램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등 우리의 주력 산업들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 지난 8월부터는 중국도 반독점법을 시행,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결국 외국 항공사들에 대한 이번 대규모 제재 조치는 우리 경쟁당국도 외국사의 담합행위를 그대로 지켜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세 측면에서 국세청이 외국 기업의 변칙 탈세행위에 대해 과감하게 과세하는 것과 같은 줄기인 셈이다. 실제로 공정위는 항공사에 대한 제재와 별개로 지적재산권 남용이 빈발한 의약 분야에서도 외국의 특허권 남용 사례를 분석, 상대적인 불이익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